시읽는기쁨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샌. 2011. 2. 27. 08:26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습다

저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웅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번씩 잡아주는 일,

그래서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그러니 어디에 상량문을 쓰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저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떼 왔다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아침 저녁이 되면 고향집 마당은 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특히 뒷산에서 내려온 참새들이 많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가지 저 가지로 뜀박질한다. 가지에 입맞춤도 한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맑고 명랑하다. 집이 없으니 천지가 내 집이다. 둥지가 없어도 겨울이 춥지 않다. 가진 것 없으니 가벼워 하늘을 난다. 그들의 존재 방식이 부럽다. 우리도 새들처럼 살 수는 없을까.

 

"하늘의 새를 보시오. 씨를 뿌리지도 추수하지도 않을 뿐더러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 주십니다. 그것들보다 여러분이 더 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목숨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습니까?" 마태 6,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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