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꽃 이야기 / 김재진

샌. 2011. 2. 19. 08:20

식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가령 산딸기가 하는 말이나

노각나무가 꽃 피우며 속삭이는 하얀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톱 한 자루 손에 들고 숲길 가는 동안

떨고 있는 나무들 마음 헤아릴 수 있다면

꿈틀거리며 흙 속을 사는 지렁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제는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늑대의 눈 속으로 벅차오른 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와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의

그 많은 창문들 하나하나 열어 볼 수 있다면

휘영청 달뜨는 밤

산꽃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 산꽃 이야기 / 김재진

 

<식물도 생각한다>라는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대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식물도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도 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지금도 책 제목이 생각나는 걸 보면 당시에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라이터 불을 켜서 태우려고 하면 식물은 알아채고 공포에 떤다. 그러나 가짜로 위장해서 똑같은 행동을 하면 식물은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 체내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신호를 관찰하여 이렇듯 신기한 사례를 들고 있는 책이었다.

 

온실에 고전음악을 틀어주고 꽃을 기르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화초는 더 아름답게 자란다고 한다. 우리가 못 알아들을 뿐 자기들 방식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신호를 주고받는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비밀스러운 자연의 대화 방식이 있다는 것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들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경탄스러울 것인가. 너와 나 사이에 닫힌 마음의 창문을 하나씩 열어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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