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의 임종은 / 김관식

샌. 2011. 1. 29. 19:54

남향 미닫이, 재양한 마루끝에

귀여운 젖먹이 무릎에 안고 앉아 조용히 엄마의 얼굴처럼 화색이

되는 자애로운 하늘 아래 하찮은 미물들과 푸나무 떨기조차 은총에 젖어 축복을

받는

 

오늘은 춘분! 낮과 밤이 같은 날.

나의 임종은 자정에 오라!

가장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듯

너를 위해 즐겨 마중하고 있으마

비인 방에 호올로 누워 천고의 비밀을 그윽히 맛보노니...

 

가여운 아내 아들딸들아.

아이예, 불쌍한 울음일랑 들레지 말라.

그동안 신세끼친 여숙을 떠나

미원한 본택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벌판에 내던지면 소리개와 사갈의 밥이 될 게고 땅에 묻으면

아미와 구더기의 즐거운 향연.

 

(발가숭이로 왔으니 발가숭이로!)

불타여. 피 빨아먹고 산 공변된 공변된 업이요 보가 아니오니까. 백운대 위에 세워 풍장을 해도숱연키야 하겠다만 모초롬만에 연인들을 데리고 하이킹 코오스를 밟아 나온 알피니스트 제위께서 뜻하지 않이 당하는 일에 질겁들을 하실 테니... 어차피 활활 타는 불가마에 넣어 다비하는 게 또한 해롭지 않을라.

 

저녁밥상을 물리고 난 여름밤

멸구 깔따귀를 앞세우고 날아와

스스로 불에 들어

오뇌의 나래 파닥거려 시루는 불나비처럼, 깃은 찟기고 죽지만 남아

형해뿐의 육신이지만 달라는 이 있거든 서슴없이 인도하라.

 

그리고 또, 낙엽이 구으는 가을 황혼에 빗물에 홈이 파진 외딴 산골길.

민첩한 다래미 손에서도 어느새 빠져나와

가랑잎 사이 구르는 상수리 열매처럼

사고의 허을 벗어 던져버리고 모든 것 거기 두고 나 여기 간다.

잘 있어! 서러워 말아다오.

 

한잠 자고 난

겨울 아침에

예고도 없이 별안간 조촐디 조촐한 흰 옷 입고

즐거운 눈발인 양 표표히 내 이승에 다시 날아올는지도 모르는 일이니.

 

- 나의 임종은 / 김관식

 

겨울 찬 기운 때문인지 이곳저곳에서 지인들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오늘은 전 직장 동료의 죽음이 날라왔다. 당뇨로 많이 고생했었는데 특유의 낙천적 성격탓인지 병을 가벼이 여기고 살아왔다. 조심하라고 여러 번 당부했건만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B 형의 명복을 빈다.

 

부음을 접할 때마다 죽음은 나에게도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의 임종이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금의 시차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약해진다. 영원한 이별 앞에서 슬프고 안타까운 건 인지상정이리라.

 

김관식 시인은 대한민국의 기인이었다. 그래선지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당당하고 호쾌하다. "나의 임종은 자정에 오라!"고 호통치며 "비인 방에 호올로 누워 천고의 비밀을 그윽히 맛보겠다"고 말한다. 장자만큼 스케일이 크고삶과 죽음에 초월해 있다. 이런 사람이라면 저승사자도 흥미를 잃고 돌아가지 않을까. 누구나가 '죽음 복'을 희망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는 태도도 달라진다고 본다. 잘 사는 것이 결국은 잘 죽는 비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