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염장이와 선사 / 조오현

샌. 2011. 2. 6. 08:17

어느 신도님 부음을 받고 문상을 가니 때마침 늙은 염장이가 염습殮襲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염습하는 모양이 얼마나 지극한지 마치 어진 의원이 환자를 진맥하듯 시신屍身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고, 염을 다 마치고는 마지막 포옹이라고 하고 싶다는 눈길을 주고도 모자라 시취屍臭까지 맡아 보고서야 관 뚜껑을 덮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한솥밥을 먹은 가족이라도 죽으면 시체라 하고 시체라는 말만 들어도 섬쩍지근 소름이 끼쳐 곁에 가기를 싫어하는데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 그것도 다 늙고 병들어 죽은 시충屍蟲까지 나오는 시신을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염장이는 처음 보았기에 이제 상제와 복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염장이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처사님은 염을 하신 지 몇 해나 되셨는지요?"

"서른둘에 시작했으니 한 40년 되어 갑니더."

"그러시면 많은 사람의 염을 하신 것 같으신데 다른 사람의 염도 오늘처럼 정성을 다하십니까?"

"별 말씀을 다 하시니.... 산 사람은 구별이 있지만서도 시신은 남녀노소 쇠붙이 다를 것이 없니더. 내 소시에는 돈 땜이 이 짓을 했지만서도 이 짓도 한 해에 몇백 명 하다 보니 남모를 정이 들었다 할까유. 정이.... 사람들은 시신을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산 사람이 무섭지 시신을 대하면 내 가족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자신의 시신을 보는 듯해서...."

이즘에서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갈 길을 그만 가야겠다는 표정이더니 대뜸,

"내 기왕 말씀이 나온 김이니 시님에게 한 말씀 물어봅시더. 이 짓도 하다 보니 시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떤 시님은 사람 육신을 피고름을 담은 가죽 푸대니, 가죽 주머니, 욕망 덩어리라 이것을 버렸으니 물에 잠긴 달그림자처럼 영가靈駕는 걸림이 없어 좋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시님은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라 했던가유? 그렇게 하고, 또 어떤 시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염불만 하시는 시님도 있고.... 아무튼 시님들 법문도 각각인데 그것은 그만두시고요. 참말로 사람이 죽으면 극락지옥이 있습니꺼?"

흔히 듣는 질문이요 신도들 앞에서도 곧잘 해왔던 질문을 받았지만 이 무구한 염장이 물음 앞에는 그만 은산철벽을 만난 듯 동서불명東西不明이 되고 말았는데, 염장이는 오히려 공연한 말을 했다는 듯,

"염을 하다 보면 말씀인데유. 이 시신의 혼백은 극락을 갔겠다 저 혼백은 지옥에 갔겠다 이런 느낌이 들 때도 더러 있어 그냥 해 본 소리니더. 이것도 넋빠진 소리입니더만 분명한 것은 처음 보는 시신이지만 그 시신을 대하면 이 사람은 청검하게 마 살았겠다 이 노인은 후덕하게 또는 남 못할 짓만 골라서 하다가 이 시신은 고생만 하다가 또는 누명 같은 것을 못 벗고.... 그 머라하지유? 느낌이랄까유? 그,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 같은 것이 시신에 남아있거든요?" 하고는 더 말을 하지 않을 듯 딸막딸막하더니, 당신의 그 노기老氣로 상대가 더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음인지,

"극락을 갔겠다는 느낌이 드는 시신은 대강대강해도 맘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죄가 많아 보이는 시신을 대하면 자신도 죄를 지은 것처럼 눈시울이 뜨뜻해지니더. 정이니더, 옛사람 말씀에 사람은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해지고 새도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다 했나니더. 죽을 때는 다 선해지니더.... 이렇게 갈 것을 그렇게 살았나? 하고 한번 물어보면 영감님 억천 년이나 살 것 같아서,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한번 잘 살아 보고 싶어서 그랬니더. 너무 사람 울리시면 내 화를 내고 울화통 터져 눈 못 감고 갑니더. 이런 대답을 들으니 아무리 인정머리 없는 염쟁이지만 정이 안 들겠니꺼? 그 돌쟁이도 먹 놓고 징 먹일 때는 자기의 혼을 넣고... 땜쟁이도 그렇다 하는데 오늘 아침 숨을 같이 쉬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 가는데요.... 아무런들 이 짓도 정이 없으면 못해 먹을 것인데 그렇듯 시신과 정을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 시신 언저리에 비로소 남아 있던 삶의 때라 할까유? 뭐 그런 것이 걷히고 비로소 내 마음도 편안해지거든요. 결국은 내 마음 편안할라고 하는 짓이면서도 남 눈에는 시신을 위하는 것이 풍기니 나도 아직...." 하고는 잠시 이윽히 바라보더니,

"시님도 다 아시는 일을 말했니더. 나도 어릴 때 뒷 절 노시님이 중 될 팔자라 했는데 시님들 말씀과 같이 업業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이제 나도 갈 길만 남은 시신입니더."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 염장이와 선사 / 조오현

이 시를 읽으면서 장자의 한 대목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에는 장애인이나 불구자, 수형자,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소 잡는 솜씨로 도(道)에 이른 백정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천민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발견한 것은 인간의 참모습을 외면하고 외모나 껍질의 노예가 된 세상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명분만 찾으며 고담준론을 일삼는 도덕군자들보다는 하층민들의 삶에서 인간 삶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시에는 염장이와 스님, 두 사람이 나오는데 시의 제목은 염장이야말로 선사임을 암시하고 있다. 염하는 일에 일념으로 정성을 다했을 때 이른 관조와 해탈의 경지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염장이 일을 시작했겠지만 그 일이 결국은 그를 진정한 삶의 달인으로 이끌었다. 무슨 일이든 혼과 정성을 다해서 한다면 선 수행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신을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결국은 내 마음 편안해지려고 하는 짓인데 남 눈에는 시신을 위하는 것으로 풍기니 아직 멀었다는 선사의마음이 무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