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 백창우

샌. 2011. 1. 24. 13:51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 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 백창우

 

친구 L과 만나 술을 마셨다. 3차까지 안 간 게 다행이었지, 그날 밤은 내 주량의 한계에까지 이르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였다. 신수가 훤해진 친구는 당당하고 자신있어졌다. 전에는 몸이 아파 소주 한두 잔이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의 술을 다 마실 듯 거침이 없었다.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난 자꾸 쓸쓸해지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술잔 속에서 무릎 꿇은 이상이 어른거렸다. 서러워서 자꾸 술잔을 들었다.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라고?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품고 사는게 행복이라고? 꿈이 무너지고 짓밟혀도 희망은 놓지 말아야 한다고.... 사는 게 그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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