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3

청량리역 / 서경온

중1 담임교사였을 때 가출한 학생을 청량리역에서 찾았다 자그마한 어깨에 아버지의 긴 낚싯대를 메고 있었다 본 적 없는 바다 가서 고기를 잡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청량리, 중량교 가요"라는 버스 안내양의 다급한 외침이 "차라리 죽는 게 나요"라고 들린다던 60년대 어느 날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희미한 제천역 대합실 불빛을 떠나 비 내리는 밤 청량리역에 내렸다 멀리 바라보이던 오스카극장의 휘황한 네온사인이 처음 보는 바닷속 찬란한 물고기들 같았다 - 청량리역 / 서경온 나 역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 청량리역이었다. 그 시절 서울로 오는 유일한 방법은 중앙선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완행과 급행이 있었는데 감히 급행을 탈 엄두는 못 내고 역마다 모두 서는 완행만 탈 줄 알았다. 자리가 안 나면 ..

시읽는기쁨 2022.10.09

충북선 / 정용기

다음 생에는 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 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 3, 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 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 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 제천 역전시장을 가야지. 무쇠 솥에서 끓여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 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 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 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 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 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 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 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 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 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 어쨌거나 다음 생에..

시읽는기쁨 2018.04.22

KTX를 타다

동료의 모친상 문상을 위해 대구에 다녀오는 길에 KTX를 이용했다. 개통된지 3년이 넘었지만 실제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KTX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나로서는 마땅찮았다. 좁은 나라에서 굳이 고속열차가 필요한지,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징되는 문명의 질주에 심리적으로왠지 거부감이 생겼던 탓이었다. 천성산을 둘러싼 환경 파괴 논란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속열차 시대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서울역으로 나가며 시속 300km의 속도감이 어떠한지, 그리고 열차 내의 분위기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열차는 예상 외로 조용했고, 좌석도 편안했다. 예전 기차에서 규칙적으로 들렸던 덜커덕거리는 소음도 없었고, 시속 300km에서 오는 속도감도 거의 느끼질 못했다. 모니터의 속도 표시가 없었다면 얼마..

사진속일상 2007.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