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청량리역 / 서경온

샌. 2022. 10. 9. 09:54

중1 담임교사였을 때

가출한 학생을 청량리역에서 찾았다

자그마한 어깨에

아버지의 긴 낚싯대를 메고 있었다

본 적 없는 바다 가서

고기를 잡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청량리, 중량교 가요"라는

버스 안내양의 다급한 외침이

"차라리 죽는 게 나요"라고 들린다던

60년대 어느 날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희미한 제천역 대합실 불빛을 떠나

비 내리는 밤 청량리역에 내렸다

 

멀리 바라보이던

오스카극장의 휘황한 네온사인이

처음 보는 바닷속

찬란한 물고기들 같았다

 

- 청량리역 / 서경온

 

 

나 역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 청량리역이었다. 그 시절 서울로 오는 유일한 방법은 중앙선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완행과 급행이 있었는데 감히 급행을 탈 엄두는 못 내고 역마다 모두 서는 완행만 탈 줄 알았다. 자리가 안 나면 예닐곱 시간을 온전히 서 있어야 했다. 개학이 임박해서 올라올 때는 열차는 이미 만원이 되어 있어 탈 수 있기만 해도 다행이었다. 원주를 지나면 딱 반이 지났고, 망우역을 지나면 서울이 코앞이었다. 그때부터 승객들은 선반을 짐을 내리느라 부산했다.

 

청량리역에 내리면 널찍한 광장이 나왔다. 집으로 가자면 광장을 지나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 신설동으로 가서 다시 돈암동행 버스를 갈아탔다. 할머니와 동행이고 짐이 많을 때는 택시를 타기도 했다. 그럴 때는 가능하면 빨리 나와야지 안 그러면 긴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택시 정류장 옆에는 시계탑이 우뚝 서 있었다. 아침에 고향 집을 출발해서 코딱지만 한 돈암동 셋방에 들어가면 저녁이 되었다.

 

시에 나오는대로 역 광장에서 보면 맞은편에 오스카극장이 있었다. 영화 간판이 크게 걸려 있어 다른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오스카극장은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를 상영했다. 나중에는 두 편을 동시 상영하기도 해서 한 번 들어가면 네 시간은 때울 수 있었다. 나중에 세워진 대왕빌딩 안에 시설 좋은 극장이 들어서면서 오스카극장은 경쟁력을 잃었다. 청량리역에 내려서 광장으로 나오면 혼잡한 청량리 로터리와 맞은편의 오스카극장 풍경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청량리역의 첫 기억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왔을 때였다. 시골 촌놈이 차와 사람으로 혼잡한 서울 거리에 넋이 빠져 앞서 가는 아버지를 놓칠 새라 겁을 잔뜩 먹었다. 아버지는 서울에 사는 친구분과 약속이 있으셨는지 역전 다방에 들어가셨다. 그때 처음으로 다방 구경을 했다. 홀 가운데 있는 큰 어항 속의 금붕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원을 했던 고등학교 앞 여관에 방을 얻고 어리둥절한 가운데 다음날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합격을 하면서 나중에 자가용이 생길 때까지 청량리역과의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면목동에 살았기 때문에 매일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 앞을 지나다녔다. 직장에 다닐 때는 1호선 전철로 갈아타는 곳이 청량리였다. 2, 30대 시절에 제일 많이 발을 디딘 곳 중 하나가 청량리인 셈이었다. 등하교나 출퇴근길이 청량리, 중량교를 거쳐 면목동에 이르는 길이었는데, 이 시에 나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요"라는 유머는 그때부터 있었다. 거기에 면목동을 보태서 우리는 "차라리 죽으러 가는 길, 면목 없네요" 하는 식으로 변형하며 웃었다.

 

청량리가 교통의 요지다 보니 약속 장소도 주로 청량리였다. 로터리 지하에 있는 미주다방을 들락거렸고, '징기스칸'이라는 경양식집도 생각난다. 종로까지 나가는 대신 작기는 하지만 그 부근에 있던 서점도 자주 이용했다. <고독한 산보자의 몽상>이라는 루소의 책을 샀던 기억이 유독 남아 있다. 면목동에서 살 동안은 청량리가 내 생활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거기에서 청량리역은 고향과 서울을 연결하는 입구이면서 출구였다. 열차를 타러 갈 때는 설레었고, 열차에서 내려 서울로 들어올 때는 오래 살아도 정이 들지 않는 타향살이의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청량리역은 2층으로 된 직사각형의 멋대가리 없는 건물이었다. 가운데 대합실이 있었고, 하차한 승객은 건물 왼쪽에서 나왔다.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환하게 웃으시며 나오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제는 기차 탈 일이 없으니 청량리역은 멀어졌다. 몇 년 전인가 청량리에 나간 길에 일부러 역을 찾아가서 옛 추억을 반추해 보려다가 헛웃음만 나왔다. 너무 변했기 때문이다. 옛날 그 자리인지 모르지만 시계탑만이 유일하게 아는 체를 해 주었는데, 그마저도 세련되게 변해서 나를 자꾸 쫓아내는 것만 같았다.

 

시인이 청량리역에서 느꼈을 감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찾아보니 서 시인은 나와 비슷한 연배에 교사 생활의 경력도 같다. 고향도 그리 멀지 않다. 잠시 옛 추억에 잠기게 한 고마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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