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솔로몬의 계절 / 이영균

샌. 2022. 10. 25. 09:51

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 솔로몬의 계절 / 이영균

 

 

어제 친구와 통화하면서 옛 동료의 투병 소식이 화제에 올랐다. 누구보다 총명했던 분인데 지금은 인지 능력이 떨어져 친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횡설수설하신다는 전언이다. 세월 앞에서 누구나 스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러면서 친구가 말했다. 통계에 의하면 80세까지 생존 확률이 30%라는 것이다. 지금 얼굴을 맞대는 친구들의 70%가 저 세상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때가 10년도 안 남았다. 물론 내가 포함될 확률도 70%다. 100세 시대라고 떠들면서 오래오래 살 것 같지만 실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산다는 게 빈 껍데기인 것만 같다. 추풍낙엽의 계절이어서 더욱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은 <코헬렛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가 세상의 온갖 쾌락을 누린 뒤에 인생의 말년에 한 고백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묻는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생명을 받은 모든 존재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곧 죽는다는 사실이다. 한껏 허무주의에 빠져도 괜찮은 계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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