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일 2

왜 / 김순일

쥐 소 호랑이 토끼가 달려간다 용 뱀 말 양도 달려간다 식식거리며 잰나비 닭 개 돼지도 달려간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겨간다 죽을 둥 살 둥 벼랑 끝으로 가랑잎 같은 해가 지고 왜, 달려왔지?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잰나비닭개돼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 두리번 - 왜 / 김순일 언젠가는 왜, 라고 물을 때가 올 것이다. 천지 분간 못하고 달려왔지만 언젠가는 벼랑 끝에 닿을 것이다. 이것은 실존적인 개인의 체험일 수도 있고, 인류 전체의 종말론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시작되었고 해는 기울어가고 있다.

시읽는기쁨 2014.12.27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누우떼가 아프리카 대륙이 꺼지게 달려간다 건기를 맞은 수천 마리 누우떼가 싱싱한 풀밭을 찾아 먼지 자욱한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간다 도룡농 도마뱀 물고기 따위나 잡아먹으며 늘 배가 안차서 걸근거리던 악어들이 때를 만나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처럼 포식을 하고 비단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뒤따라 강을 건너던 누우란 놈 겁도 없이 악어의 등때기며 머리통을 밟고 건너가는구나 요녀석 봐라 선잠을 깬 악어가 누우의 허벅지를 물고 짓이겨 댔는데 이거 어쩐 일인가 요단강 건너는 줄 알았던 누우의 허벅지엔 이빨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구나 오금아 날 살려라 혼 나간 누우란 놈 허둥지둥 강을 건너갈 때 악어녀석 벙긋벙긋 꽃잠 속으로 드는구나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갓깬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층 아파트 창..

시읽는기쁨 201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