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3

풀 / 김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 풀 / 김재진 '아름다움'은 '앓음'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예술 작품을 보라. 창작 과정의 고통과 아픔 없이 나오는 명작은 없다. 상처의 향기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풀은 자신의 전 생이 베어지는 때에 향기를 낸다. 원망과 한탄의 늪에 빠지거나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는다. 상처에서 나오는 악취는 썩는 신호다. 향기는 생명 의지의 표현이다. 상처의 향기가 아름다움이다.

시읽는기쁨 2019.08.30

산꽃 이야기 / 김재진

식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가령 산딸기가 하는 말이나 노각나무가 꽃 피우며 속삭이는 하얀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톱 한 자루 손에 들고 숲길 가는 동안 떨고 있는 나무들 마음 헤아릴 수 있다면 꿈틀거리며 흙 속을 사는 지렁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제는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늑대의 눈 속으로 벅차오른 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와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의 그 많은 창문들 하나하나 열어 볼 수 있다면 휘영청 달뜨는 밤 산꽃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 산꽃 이야기 / 김재진 라는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대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식물도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도 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지금도 책 제목이 생각나는 걸 보면 당..

시읽는기쁨 2011.02.19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은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시읽는기쁨 200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