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9

들깨를 수확하다

어머니의 농사 사랑은 아무리 말려도 안 된다. 지팡이를 짚고 가서라도 빈 밭을 놀리지 않으신다. 밭으로 가는 산길이 험해서 자식 입장에서는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올해는 뒷밭에 들깨 한 종류로만 놓으셨다. 300평 정도 되는데 수확은 엄두가 나지 않으셨는가 보다. 일주일 전에 여동생이 내려가서 들깨 베는 걸 도왔고, 털 때는 내가 내려갔다. 이틀 정도 예상했는데, 다행히 하루 만에 끝냈다. 다른 밭작물처럼 들깨도 올해는 수확이 시원찮았다.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야 사서 먹는 게 더 이득이다. 그러나 어머니 입장은 다르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농사를 손에서 떼기도 힘들거니와, 길러서 자식 주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신이 생존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이다. 만약 집안에만 계..

사진속일상 2020.10.27

어머니 생신 모임

이번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으셨다. 예전에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였다. 지금은 백세시대라지만 그래도 구십이라는 나이는 쉽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다. 비록 작은 동네긴 하지만 고향에서는 현재 어머니가 최고령이시다. 내가 나가는 한 모임의 회원 열 명 중에는 현재 생존하신 부모님이 딱 두 분 계신다. 확률이 10%인 셈이다. 원래는 이모와 고모, 그리고 조카까지 초대하는 모임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겼다. 어머니는 이런 판국에 무슨 생일 행사냐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자식 처지에서는 모른 척 넘길 수 없었다. 형제만 함께 하는 간소한 모임으로 축소하고 펜션 독채를 빌렸다. 손주도 오라 하지 않았다. 음식점에서의 외식 대신 펜션 안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도 예약했다가 마..

사진속일상 2020.06.29

동생네 집

고향에 새로 지은 동생네 집이 완성되었다. 공사를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새집으로 입주했다. 워낙 솜씨가 좋아서 동생이 직접 인부들을 써서 완벽하게 지었다. 상급 자재를 쓴 내실 있는 목조주택이다. 아흔 가까이 되어 자식이 곁에 오니 어머니도 무척 기뻐하셨다. 나도 한시름을 놓았다. 대신 내집을 잃은 허전함도 있다.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집들이를 했다. 동생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첫째의 역할을 못하는 미안함이 겹친다. 새집이 동생네와 어머니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길 빈다.

사진속일상 2017.06.04

54년

54년 전에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전에 살았던 집이 좁아서 옆의 밭을 사서 아버지가 새집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꽤 번듯했던 집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낡았고, 수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살겠다고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곧 이 집은 헐릴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 부모님, 네 동생과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제일 먼저 집을 떴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떠나면서 오랜 기간 어머니 홀로 이 집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니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삼형제가 모여서 어..

사진속일상 2017.04.03

상주에서

세월 앞에 버틸 장사는 없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새로운 존재가 그 뒤를 잇는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고향집을 지은지 54년이 되었다. 다른 한옥의 나무를 가져다 뼈대를 만들었으니 실제 나이는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다. 한때는 여덟 식구가 북적였지만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 홀로 지키고 계시다. 이제 이 집도 지상에서의 연을 마감하려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상주에 사는 동생네 집에 간 날, 750살이나 되신 감나무를 찾아갔다. 나이에 많이 뻥튀기가 된 나무다. 사람은 나이 드는 걸 감추는데 나무는 나이 많은 걸 자랑한다. 자주 어머니를 뵙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만에 같이 감나무 앞에 섰다. 늙으면 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지 나도 이제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사진속일상 2017.03.23

수타사 산소길과 구룡령 옛길

강원도 여행 첫날은 공작산에 있는 수타사 산소길을 걸었다. '산소길'은 강원도에서 만든 숲길 이름이다. 2018년까지 약 70개의 산소길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총 길이는 500 km 가까이 된다.수타사 산소길은 그중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길이다. 길은 수타사(壽陀寺)에서 시작하여 수타사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해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전체 길이는 약 4 km가 된다. 계곡 오른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길은 부드럽고 완만한데 왼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오르내림이 심하다. 수타사 계곡은 흰 암반과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길 중간 쯤에 있는 귕소는 특히 눈길이 갔다. '귕'은 소여물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굵은 나무를 길게 파내어 소여물을 담았다. 이곳의 생긴 모양이 닮아서 그..

사진속일상 2010.10.16

빗속의 강원도 여행

방태산 트레킹을 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에 8 명의 일행이 강원도로 떠났다. 홍천군 내면 월둔리에서 트레킹을 시작해서 아침가리골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틀 내내 비가 오는 통에 계획은 수정되었고 차로 방태산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곳을 가게된 즐거움도 컸다. 강원도로 가는 첫날에는 남양주 수석리에 들러서 조말생(曺末生) 선생 묘와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서종면에 있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생가터도 찾아갔다. 지금은빈 터지만 곧 생가 복원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또 양평과 홍천을 지나 공작산에 있는 수타사(壽陀寺)에도 들렀다. 봄비 내리는절집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좋았다. 저녁..

사진속일상 2009.05.18

동생은 재주꾼

동생은 재주꾼이다. 뭐든 못하는 일이 없다.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도시 생활을 접고 가족과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벌써 4년이 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손으로몇 년에 걸쳐 흙집을 지었다. 그동안은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이번에 갔더니 많이 정리가 되고, 생활도 안정되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농사도 짓고, 산으로 약초도 뜯으러 다니며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제 마음의 여유도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집 입구에 있는 장승도 동생이 직접 만든것이다. 또 서각을 배우더니 자신의 집을 '達屯煙家'라 칭하고멋지게 글자를 새겨 길 옆에 걸어 두었다. 민박을 겸하고 있으니 집의 간판인 셈이다. 동생은 이웃들과도 잘 어울린다. 귀농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웃과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동생은 처신을..

사진속일상 2005.06.16

동생네 집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동해 바다로 갔다. 3시간여를 달려간 곳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더니 아침이 되니 고요해 졌다. 가지 가지 사연을 안고선 사람들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제 밤에는 해안가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돌아보니 아내와의 여행도 근 5년 만이다. 자주 여행을 다닌 편이었는데 터에 미친 뒤로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터였다.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 어느 때가 되면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리고 반대로 하찮게 여겼던 것의 가치가 새롭게 살아나기도 한다. 내 주위를 스쳐가는 만상들은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그 중 어느 하나에 집착함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고 가볍게 살기가 힘..

사진속일상 200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