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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묘

용인에 간 길에 마침 민영환 선생 묘가 부근에 있어 들렀다.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선생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다. 선생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다. 선생은 동부승지, 이조참판, 한성부윤 등의 요직을 지냈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일찍이 서구 문명을 접하며 나라의 개혁에 앞장섰지만 친일 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반대 상소를 올리며 항의했으나 실패하자 동포와 각국 공사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묘소 비문에는 선생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가운데에서..

사진속일상 2024.09.08

코로나 추석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추석 차례를 주관하며 지낸 게 40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대단하기는 하다. 할 일이 없어진 추석날은 길 걷기에 나섰다. 문득 난설헌이 생각났고,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난설헌 묘가 있다. 전날은 감정 낭비가 심했는데 황폐해진 속도 달랠 겸 느릿느릿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를 내려다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난설헌의 가련한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자동차들의 굉음이 이어지던 중부고속도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상행선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묘 옆에 있는 시비(詩碑)에는 난설헌 시..

사진속일상 2020.10.02

광평대군 묘역

볼 일이 있어 서울 수서에 나갔다가 광평대군 묘역에 들렀다. 전에 이 부근에서 살 때는 조선 왕자의 묘라는 것만 알았지, 누구의 묘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는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시간을 보낼 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왕손의 묘역으로는 원형이 제일 잘 보존된 곳이라 한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묘를 중심으로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후손 묘 700여 기가 있다. 광평대군 묘는 처음에는 선릉 부근에 있었으나 연산군 때 지금 위치로 이장되었다. 광평대군과 부인 신씨의 묘소는 높은 언덕 위에 쌍분으로 되어 있다. 묘 앞에는 장명등과 명종 7년(1574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거의 왕릉과 비슷한 규모다. 삼성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묘에서 내려다 보는 풍..

사진속일상 2019.06.14

정몽주 묘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선생의 묘가 있다. 모현(慕賢)이나 능원(陵院)이라는 지명이 모두 이곳에 있는 정몽주 묘에서 유래된 것 같다. 원래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은 고려를 개혁하려는 한 뜻이 있었다. 특히 다섯 살 아래인 정도전과는 성균관에서 같이 근무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는 같았지만 방법론에서 둘은 갈라졌고,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정몽주가 온건 개혁파라면 정도전은 급진 혁명주의자였다. 정몽주는 유학에 기반을 둔 명분에 집착했고, 정도전은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역성혁명마저 불사했다.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을 지켰고, 정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 중 어느 길이 옳은가를 가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다만..

사진속일상 2014.05.01

허난설헌 묘

허난설헌 묘가 경기도 광주에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난설헌을 떠올리면 늘 애잔하다. 시대와 맞지 못했던 인간의 슬픈 삶을 그는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라고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난설헌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다.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초희의 어린 시절은 열다섯에 시집을 가면서 180도로 변했다. 똑똑하고 자부심 강한 여성에게 가부장적 인습의 굴레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시집 입장에서는 반대로 까칠한 며느리와 아내가 탐탁치 않았을지 모른다. 20세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난설헌이 16세기 조선의 답답한 분위기를 견디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묘 앞 안내문에는 그녀의 일생이 이렇게 적혀 있다.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

사진속일상 2014.04.20

심곡서원과 조광조 묘

심곡서원(深谷書院)은 중종 때 문신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효종 원년(1650)에 서원이 건립되어 심곡(深谷)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다. 중앙에 있는 건물이 일소당(日昭堂)인데 강당(講堂)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유림의 회합과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된다.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낸다. 조광조는 중종에 의해 등용되어 소격서(昭格署) 폐지, 정국공신 훈공 삭제, 신진인물 등용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개혁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반대파에 의한 정치적 반란인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다. 이 사화로 선생은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나이 3..

사진속일상 2012.11.30

묵뫼 / 신경림

여든까지 살다 죽은 팔자 험한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에 죽은 말강구가 묻혀 있다 생전에는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이들도 있다 부드득 이를 갈던 철천지원수였던 이들도 있다 지금은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목뫼 위에 쑥부쟁이 비비추 수리취 말나리를 키우지만 철 따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면서 뜸부기 찌르레기 박새 후투새도 불러 모으고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면서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 묵뫼 / 신경림 묵뫼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어진 무덤을 뜻한다. ..

시읽는기쁨 200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