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 4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분별하고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일일 뿐, 잘난 도토리 못난 도토리가 어디 있겠는가. 땅에 떨어져서 청설모의 먹이가 되든, 어찌해서 참나무로 자라든, 도토리는 각자의 몫을 한 것뿐 거기에 우열은 없다. 들에 핀 꽃이나..

시읽는기쁨 2021.08.30

논어[212]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시를 삼백이나 외우는데, 정치를 맡되 사리에 어둡고, 외국에 보내 보아도 제 구실을 못하면 많이 안다고 한들 무엇에 쓴담!" 子曰誦詩三百 授之以政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 子路 5 시를 외우는 건 당시에 공부의 중요 과목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지식 전반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실무에 응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고 공자는 말한다.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공자 학당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無用之用]'을 강조했다. 현실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는 가장 쓸모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두 학파의 대비되는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삶의나침반 2016.09.12

장자[189]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 말은 쓸모가 없다." 장자가 말했다. "그대가 무용을 안다니 비로소 유용을 더불어 말할 수 있겠네. 대저 지구는 넓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발자국을 용납할 정도뿐이네. 그렇다고 쓰지 않는 발자국 주변의 땅을 황천까지 굴착해 버리면 사람들이 오히려 유용하다 하겠는가?" 혜자가 말했다. "무용하다고 하겠지." 장자가 말했다. "그런즉 무용한 것도 유용한 것이 분명하다네."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 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厠足而塾之 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 無用之爲用也亦明矣 - 外物 7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말함에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걸어가는데 필요 없다고 발자국이 닫는 부분만 남기고 파낸..

삶의나침반 2011.12.14

장자[176]

무릇 발로 갈 수 있는 땅은 밟을 수 있는 땅뿐이다. 비록 밟은 땅뿐이지만 밟지 않은 땅이 많다는 것을 믿으며 그런 연후에야 밟은 경험을 잘 넓힐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지식은 적다. 비록 아는 것은 적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의뢰하면 자연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故足之於地也 踐 雖踐 恃其所不전 而後善搏也 人之於知也少 雖少恃其所不知 而後知天之所謂也 - 徐无鬼 14 걸어가는데 넓은 땅이 필요 없다고 발로 밟을 자리만 남기고 모두 없애면 어떻게 될까.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말 것이다. 밟지 않는 넓은 땅이 있으므로 내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것이 실용적 관점과 다른 점이다. 세상은 오직 유용(有用)만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어지럽고 비틀거린다. 평화나 기쁨, 행복이 없다. 장자는 ..

삶의나침반 201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