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샌. 2021. 8. 30. 10:22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분별하고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일일 뿐, 잘난 도토리 못난 도토리가 어디 있겠는가. 땅에 떨어져서 청설모의 먹이가 되든, 어찌해서 참나무로 자라든, 도토리는 각자의 몫을 한 것뿐 거기에 우열은 없다. 들에 핀 꽃이나 하늘을 나는 새도 같은 얘기를 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마음이 쓰이거든 '쓸모 없음의 쓸모'를 강조한 <장자>에게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란다. 잘 생긴 나무는 일찍 베어지고, 못 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는 묻혀 참나무가 되어 새의 거처가 되고 쉬어가는 그늘이 되어 준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 단지 약자의 위안거리는 아니다. 하늘이 낸 존재는 쓸모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빛난다. 왜 이렇게 태어났고, 왜 이렇게 생겨먹었고, 왜 이 꼴이냐고 한탄하지 마라.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