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샌. 2021. 9. 19. 11:16

1

젊은 날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

를 꺼내 듣다가, 까맣게 잊었던 노래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간까지 되찾고는 한다.

 

그러니 새 노래를 더 알아 무엇 하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내 한 시절과 단단히 묶여 있는데

지금 들으면 간주마다 되새길 서사가 있어

귀에 더 두툼하고 묵직하니

 

이제, 모아둔 음반, 가려 녹음해둔 테이프

를 새겨듣기에도 내 세월이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2

옷장을 열어보면,

기워 입지 않고 버리는 부유한 세상으로 건너오며

한 시절 내가 골라 입었던 적지 않은 옷들,

오늘 내 생애처럼 걸려 있거나 쌓여 있다.

다 아직 입을 수 있는 옷들,

반팔, 반바지는 헌 자리 하나 없다.

 

그러니 새 옷을 더 사 입어 무엇 하나,

문득 열 해, 스무 해 전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나는 그때 나이로 돌아간다, 그렇게 여긴다.

사진첩 속에 멎어 있던 젊은 내가 햇살 속을 활보한다.

 

3

새 사람을 사귀어 무엇 하나,

내가 챙기지 못해 멀어진 사람들,

아직도 할 말, 들을 말이 남은 헤어진 사람들

옛 주소록 여기저기 간신히 남아 있다.

 

아주 늦기 전에, 그들을 찾아

지난 세월의 안부를 물으며 위로하고 위로 받고

거듭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간혹 용서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낳지 않은 사람들의 안부를 알아볼까,

그 이름을 낮게 불러볼까.

 

-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너무 많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책장의 책도 그중 하나다. 한때는 밤을 새워 읽거나 침을 꼴깍 삼키며 페이지를 넘겼을 책들이 골동품처럼 꽂혀 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책은 바닥에서 뒹군다. 다시 읽을 의욕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다. 손때 묻은 추억 외에 남은 것은 없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칸마다 음식물로 가득하다. 한 몸뚱이 살아가는데 뭐가 이리 많은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없어도 별 탈 없는 것들로 나는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잊고 산다. 풍요 속 결핍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물건들만이겠는가.

 

너무 많은 수다

너무 많은 불평

너무 많은 주장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소음

너무 많은 음모

너무 많은 지식

너무 많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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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