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겨울 산 / 황지우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 우리가 월세로 내야 하는 게 고통이란다. 고통의 해석이 신선하다. 살면서 응당 지불해야 할 대가로 생각한다면 고통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 더 나아가 성장과 발전의 디딤돌로 삼을 수도 있다. 시인은 겨울 산에 올라서 사람만 아니라 산 역시 견디며 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만물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떤 연유로 집에서 나왔든,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걸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워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기회주의자'라는 단어가 돌출되어 신경을 쓰게 한다. 뒤에 나오는 '사색(思索)'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기회주의자는 사색이 아니라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닌가.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색하고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하긴 허울 뿐인 사색이 넘쳐나긴 한다. 사색으로 생각을 굴린들 얻을 게 무엇인가. "집으로 가야겠다"는 한 마디에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진실은 단순하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0) | 2021.10.24 |
---|---|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0) | 2021.10.14 |
내가 몰랐던 일 / 이동순 (0) | 2021.09.25 |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0) | 2021.09.19 |
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 이유경 (0) | 2021.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