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겨울 산 / 황지우

샌. 2021. 10. 4. 10:07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겨울 산 / 황지우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 우리가 월세로 내야 하는 게 고통이란다. 고통의 해석이 신선하다. 살면서 응당 지불해야 할 대가로 생각한다면 고통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 더 나아가 성장과 발전의 디딤돌로 삼을 수도 있다. 시인은 겨울 산에 올라서 사람만 아니라 산 역시 견디며 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만물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떤 연유로 집에서 나왔든,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걸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워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기회주의자'라는 단어가 돌출되어 신경을 쓰게 한다. 뒤에 나오는 '사색(思索)'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기회주의자는 사색이 아니라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닌가.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색하고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하긴 허울 뿐인 사색이 넘쳐나긴 한다. 사색으로 생각을 굴린들 얻을 게 무엇인가. "집으로 가야겠다"는 한 마디에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진실은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