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샌. 2021. 10. 14. 11:46

준비물 설탕 소다 국자

불 뚜껑을 열면

연탄 냄새 콧구멍 수세미질을 한다

코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날름거리는 불꽃 위에

설탕 담은 국자를 갖다 대면

꿀이 된다

젓가락으로 소다를 찍어

녹은 설탕물을 저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뽑기가 된다

황홀하게 달콤하고 위험하게 고소하다

국자 색깔은 새카맣다

이제 얻어맞는 일만 남았다

 

-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오징어 게임' 때문에 다시 뽑기가 유행하는가 보다. 그것도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열풍이다. 드라마에서는 '달고나'라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종류가 엄청 많다. 대략 1만 원 정도 하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서 처음보다 두 배나 값이 올랐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취방이 바로 골목과 접하고 있었다. 얇은 벽에 창문이 나 있어 골목 소음이 그대로 방안까지 들어왔다. 휴일이 되면 뽑기 아저씨가 내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좌판을 펼쳤다. 달콤한 설탕 냄새와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하루 종일 코와 귀를 간지렸다. 공부를 하다가도 어떤 때는 유혹을 못 이기고 뽑기를 사 와서는 열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단맛과 함께 강한 소다 맛으로 그때의 뽑기가 떠오른다.

 

돌아보면 그런 환경에서도 별 지장 없이 공부를 했다. 바깥 소음 때문에 공부를 못 하겠다고 불평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주인집이 목공소를 해서 나무 켜는 소리가 요란했다.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는 엄청나게 높은 데시벨이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늙으니까 소리에 엄청 예민해졌다. 감각 기관이 적당히 둔해져야 하는데 내 청각은 반대다. 아파트에 살면서 소리에 민감하면 견디기 어렵다. 내 생활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소리에서 오는데, 꼭 바깥 책임이라고 큰소리를 칠 수 없다.

 

우리 때는 설탕이 귀해서 주로 사카린을 먹고 자랐다. 사카린은 너무 당도가 높아 혀에 닿으면 쓴맛이 난다. 반면에 설탕의 은은한 단맛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덩달아 설탕이 뽑기로 변해가는 시각적 변화도 아이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거기에 별, 십자가, 하트 등의 모양을 뽑아내는 재미를 결합시켰다. 단순하지만 초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뽑기를 좋아할까. 단지 어른들의 추억 놀이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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