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가 있는 걸까
십여 년 외딴 곳에서 하루하루 보내다가
이 번잡한 광화문사거리 다시 와 서보니
주름진 얼굴 된 나만 산 것 같다
우리 기다려주던 사람이나 나무들
풍경 하나씩 바꾸며 없어져 갔고
옛것들 다 비켜서라!며
새것들 차례로 와서 치장할 거고
그들끼리는 쉽게 친해지겠지
그렇지, 그들끼리는
그들 세상을 공들여 만들어가겠지
다음 또 다음
우리가 보낸 세월까지도 지우면서
- 너 여기서 무엇 하고 있느냐
누구 내 어깨라도 툭 쳐줬으면 싶다
- 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 이유경
이유경 시인의 시집 <바다로 간 강>을 샀다. 흘러간 세월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쓸쓸하다. 늙는다는 건 익숙한 것에도 자꾸 낯설어지는 것 같다. 사람도 장소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몇 차례씩 만나는 대학 동기 모임이 있다.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50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 맞아, 라는 의문이 안개처럼 솔솔 피어날 때가 있다. 만난 지 몇 달밖에 안 되는 사이처럼 조심스럽고 서먹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엉뚱한 데 불쑥 착륙한 것 같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유를 친구는 모를 것이다. 떠나온 것에 대한 미련일까. 떠나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단지 복고적인 회고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존재의 안쓰러움을 숙명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표제시인 '바다로 간 강'이다.
큰비 다음 날 빗물들 냇가로 모였겠지
흙탕 된 얼굴 서로 흘낏거리며
더 깊고 넓은 곳으로 가보자며
닥치는 급물살에 등 떠밀리기도 하였겠지
녹조나 악취 따위 뿌리치며
모래밭에든 초원에든 물길도 텄었겠지
바다에 간 강 아직도 헤매고 있으려나
항구가 쏟아낸 오물 뒤지거나
산호초 구석구석 쏘다니면서
떠나온 육지 또다시 올라가 보려고
다들 힘겹게 올라가서는
이슬의 순정함 되찾아
목숨 안에서 숨 한 번 거둬보려고
- 바다로 간 강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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