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76]

샌. 2011. 8. 12. 10:36

무릇 발로 갈 수 있는 땅은

밟을 수 있는 땅뿐이다.

비록 밟은 땅뿐이지만

밟지 않은 땅이 많다는 것을 믿으며

그런 연후에야 밟은 경험을 잘 넓힐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지식은 적다.

비록 아는 것은 적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의뢰하면

자연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故足之於地也

雖踐

恃其所不전

而後善搏也

人之於知也少

雖少恃其所不知

而後知天之所謂也

 

    - 徐无鬼 14

 

걸어가는데 넓은 땅이 필요 없다고 발로 밟을 자리만 남기고 모두 없애면 어떻게 될까.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말 것이다. 밟지 않는 넓은 땅이 있으므로 내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것이 실용적 관점과 다른 점이다. 세상은 오직 유용(有用)만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어지럽고 비틀거린다. 평화나 기쁨, 행복이 없다.

 

장자는 유용(有用)과 무용(無用)의구분을 넘어서라고 한다. 도(道)의 입장에 서면 그 경계가 사라진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이란 없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가 있다. 쓸모 있다, 없다는 오직 인간의 짧은 시각일 뿐이다. 사람들이 유용(有用)의 용(用)만 알고, 무용(無用)의 용(用)을 알려고 하지 않음을 장자는 한탄한다. 그래서 무용(無用)이 오히려 대용(大用)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보라. 바로 유용(有用)의 극치가 아닌가. 돈에 눈이 먼 자들의 눈에는 강이 돈벌이의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강이 지니고 있는 생태적이고 영성적인, 어쩌면 가장 소중한가치는 당장 눈 앞의 이득이 없으니 무용(無用)한 것일 뿐이다. 내가 걸어가는데 필요 없다고 주변 땅을 없애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의뢰하면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를 연상시킨다. 장자는 무용(無用)과 무지(無知)가 유용(有用)과 지(知)의 영역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무용(無用)을 버리면 그대들이 소중해 마지 않는 유용(有用)마저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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