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인이 물었다.
“달팽이란 놈이 있는데 군주께서도 아시지요?”
혜왕이 답했다. “알지요.”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촉씨라 하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라 부릅니다.
이들은 서로 땅을 다투며 수시로 전쟁을 하는데
전사자가 수만 명이라 합니다.
패배자를 쫓을 때는 십오 일 이후에나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혜왕이 말했다. “오! 그것은 거짓말이겠지요!”
대진인이 말했다.
“신은 군주를 위해서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군주께서는 사방 상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왕이 말했다. “끝이 없지요.”
대진인이 말했다.
“마음이란 무궁에 노닌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눈으로 걸어 도달할 수 있는 나라를 돌이켜보십시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 같기도 할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글쎄요?”
대진인이 말했다.
“걸어 도달할 수 있는 땅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속에 양나라가 있으며
양나라 가운데 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왕과 달팽이 뿔 위의 만씨와
다를 것이 있습니까?”
혜왕이 말했다. “구별할 수 없겠지요!”
손님이 나가자 혜왕은 멍해져서 정신이 나간 듯 했다.
戴晉人曰
有所謂蝸者 君知之乎
曰 然
有國於蝸之左角者
謂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 謂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尸數萬
逐北 旬有五日而後反
君曰 噫 其虛言與
曰
臣請爲君實之
君以意在四方上下有窮乎
君曰 無窮
曰
知遊心於無窮
而反在通達之國
若存若亡乎
君曰 然
曰
通達之中有魏
於魏中有梁
於梁中有王
王與蠻氏
有辯乎
曰 無辯
客出而君敞然若有亡也
- 則陽 2
위나라 혜왕과 제나라 위왕이 약속을 했는데 위왕이 맹약을 깨뜨렸다. 혜왕은 자객을 보내 위왕을 암살하려 했다. 혜왕의 장군인 공손연은 암살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정식으로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자는 백성을 전란에 빠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렸다. 또 다른 신하 화자는 전쟁을 하려는 자나 반대하는 자나 모두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면서 도(道)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듣고 있던 재상 혜자는 왕에게 대진인을 추천했다. 위의 글은 그런 연후에 생긴 대진인과 혜왕과의 대화다.
이 부분은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고사의 출전이기도 하다.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이라는 말로 보잘 것 없는 일로 싸우는 인간사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산에만 올라가도 세상은 발아래에 작게 보인다. 빌딩은 성냥갑만 하게 축소되고 차들은 개미처럼 기어 다닌다. 사람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좀 더 높이 올라가면 큰 건물조차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저 먼지 같은 것들을 취하려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시선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
무한의 시공간에서 노니는 시각으로 보면 지상의 전쟁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한 점 티끌밖에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무슨 나라간의 구별이 있는지 한 뼘 땅을 더 차지하려고 살육을 벌인다.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전쟁을 일으키고 피를 흘린다. 달팽이 뿔 위에 있는 두 나라가 거기가 세상의 전부인 양 전쟁을 하는 꼴과 같다. 장자는 왕이 하려는 전쟁이 달팽이 뿔 위의 나라들 싸움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장자의 관점은 다르다. 신하들의 전쟁이냐, 화평이냐는 논쟁은 국익, 즉 ‘달팽이 뿔’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그러나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나 화평을 논하는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다.
‘와각지쟁’은 인간 사고의 협소함을 풍자하는 말이다. 우리는 대개 가족과 국가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시각만 갖추어도 의식이 트인 사람이다. 그러나 장자는 우주적 시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리가 메추라기라면 그는 대붕이다. 지상의 메추라기가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대붕을 이해할 수 없듯 장자의 사상을 우리는 비현실적이라 비판한다. 소인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니라고 노자는 말했다. 대진인의 말을 듣고 혜왕은 멍해져서 정신이 나간 듯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혜왕은 그리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