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내가 농사를 지을 때 밭을 얕게 갈았더니
그 결실도 역시 나에게 얕은 만큼 보답했다.
김매기를 풀 베듯 소홀히 했더니
결실도 나에게 소홀한 만큼 보답했다.
나는 이듬해에 농사법을 바꾸어
밭갈이를 깊이 하고 호미질을 자주 하였더니
벼가 번성하고 결실이 좋아 한 해 양식이 넉넉했다.
昔予爲禾 耕而로망之
則其實亦로망而報予
芸而滅裂之
則其實亦滅裂而報予
予來年變齊
深其耕 而熟우之
其禾繁而滋 予終年厭殖
- 則陽 3
마음을 밭에 비유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성경에도 씨 뿌리는 사람을 비롯해 마음을 밭에 비유하는 예수의 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선조들은 아예 ‘마음밭[心田]’이라고 불렀다. 게을러 밭을 얕게 갈면 결실도 그만큼 작다. 소홀히 하면 소홀히 보답하는 게 농사다. 마음 농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마음도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 한다. 마음밭을 옥토로 만드느냐, 황무지로 만드느냐는 스스로의 책임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불교 선종에서는 점수(漸修)보다는 돈오(頓悟)를 우선시한다. 돌덩이를 아무리 갈아도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점수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하늘이 내리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수행을 통해 내면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돈오란 산에서 막 캐낸 원석이고, 점수란 이를 가공해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 원석이라면 아무리 다듬은들 헛일이다. 세상에는 가짜 깨달음이 너무 많다. 돈오는 위험하고 과격하다. 겸손한 돈오와 치열한 점수가 조화를 이루어야 완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알아가는 마음공부만큼 어려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