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34

순례의 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기어(R. T. Gere)의 사진전 ‘순례의 길’을 보았다. 그가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고 티베트인들의 인권과 문화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사찰을 둘러보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와 비교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순례의 길’은 그가 티베트, 네팔, 몽고 등 불교 사찰과 유적지를 순례하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전부 흑백사진이다. 그러나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은 눈에 설다. 불교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겠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단조로운 티베트인들의 삶에서 불교가 주는 생기와 활력을 보고 싶었..

읽고본느낌 2011.07.18

보살예수(3)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선과 그리스도교의 통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종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우리는 흔히 종교를 명확한 교리나 사상체계, 그리고 뚜렷한 울타리를 지닌 공동체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상 종교는 그러한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 물체라기보다는 변하는 역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발전해가는 역동적 실재이다. 그런 역사적 변천 과정 속에서 현대에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사건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본격적인 만남이다. 서구 사상가들이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불교를 단지 학문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깊은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진지한 종교적 대화의 상대로 관심을 갖는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그에 비하여 두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

읽고본느낌 2007.11.03

지지고 볶는 일상이 훌륭한 법당

며칠 전 급체에 걸려 지금껏 고생을 하고 있다. 전날 밖에서 저녁 식사를 너무 험하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잠은 그런대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찾아온 통증으로 무척 고통스러웠다. 병원 치료를 받고 겨우 진정되었지만 이틀째 죽으로 연명하며 지내고 있다. '나'에 대한 집착과 과욕이 늘 말썽을 일으킨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인식하지 못한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절감하게 된다. 소화 기능이 마비되니 정상적인 생활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작은 통증 앞에서는 이성이니 지성도 아무 소용이 없고 힘이 되지 못했다. 작은 삐끗함 하나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렇게 내 존재 기반이 허약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다. 그래서 잃어야 얻는다는 말..

길위의단상 2007.05.24

겨울 부채

이 터와의 만남은 마을 안에 있는 S 수녀원에 피정을 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일들이 우연이기보다는 필연적인 무엇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증명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심정적인 느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운명론적으로 기울게 되는 탓인지도 모른다. 침묵 피정에 들어오며 가방 속에는 몇 개의 옷가지, 일용품들과 함께 책으로는 '성서'와 '겨울 부채'가 들어있었다. '겨울 부채'는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 승려인 키요자와 만시(1863-1903)의 짧은 종교 에세이 9편이 들어있는 소책자이다. 번역은 이현주 목사님이 했다. 불교 승려가 쓰고 개신교 목사가 번역한 책을 천주교 수녀원에 피정을 들어와서 탐독을 한 것이 별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내 신앙에..

읽고본느낌 200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