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2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 이육사 어느 정치인이 "광야에 나가 죽어도 좋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광야란 무엇일까. 광야라고 하면 육사의 광야나 예수의 광야가 우선 떠오른다. 이 정도 우주적 스케일이거나 실존적 체험의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쉬이 내뱉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나 정치꾼..

시읽는기쁨 2016.03.09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흠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 이육사 7월의 시작을 이 시와 함깨 하고 싶다. '청포도' '푸른 바다''흰 돛 단 배' '청포'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 이 시를 읽으면 아름답고 맑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장마 기간이지만 눈을 감으면 파란 하늘, 푸른 바다가 환하게 열릴 것만 같다. 이육사는 40세라는 짧..

시읽는기쁨 200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