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청포도 / 이육사

샌. 2005. 7. 1. 14:21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흠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 이육사

 

7월의 시작을 이 시와 함깨 하고 싶다. '청포도' '푸른 바다''흰 돛 단 배' '청포'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 이 시를 읽으면 아름답고 맑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장마 기간이지만 눈을 감으면 파란 하늘, 푸른 바다가 환하게 열릴 것만 같다.

 

이육사는 40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일관되게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그의 삶으로 인해이 시는 더욱 아름답게 읽힌다. 이육사의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였다고 한다. 그가 수감 생활을 할 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는데, 아마도 일제 통치에 저항하는 뜻에서 자신의 수인번호를 이름으로 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처음에는 '戮史'라는 한자를 썼다고 한다. '역사를 죽인다'는 뜻이니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가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어느 친지분이 온건한 표현으로 바꾸어 준 것이 '陸史'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눈 앞의 이(利) 보다는 의(義)을 위해 일생을 살아낸 사람의 삶은 위대하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의(義)에 목마른 인간이 아닐까 싶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는 길 / 김소월  (0) 2005.07.14
얼굴 / 이성선  (3) 2005.07.08
국화 옆에서 / 서정주  (0) 2005.06.27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0) 2005.06.20
매화 / 한광구  (0) 200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