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는 길 / 김소월

샌. 2005. 7. 14. 12:06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가는 길 / 김소월

 

출퇴근 하는 지하철 2호선의 왕십리역과 신당역 벽에 이 시가 걸려 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이 시는 내 눈에 들어온다. 하필 같은 시가 두 역에만 붙어있는지, 그리고 왜 이 시가 선택되었는지 어떤 때는 궁금해진다.

 

한국인의정서에 제일 맞는 시가 소월의 시가 아닌가 싶다. 한국인의 무의식 밑바탕에는 한(恨)이라고 할까, 체념이라고 할까,또는운명과 자연에 순응하는 유전자적심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소월의 시를 운율에맞추어 읽다 보면 내 마음 속에 어떤 애절한 공명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여러 문제로 마음이 심란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강가를 찾아서 흘러가는 저녁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울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그때의 느낌을 정확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렇지 않았나 싶다.

 

"너 왜 그렇게 세상을 아둥바둥거리며 피곤하게 살려고 해? 그냥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 되는 거야.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강물은 저렇게 흘러가는 거야. 다투지 않고 저렇게 나란히 흘러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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