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여름밤 / 이준관

샌. 2005. 7. 23. 14:12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 여름밤 / 이준관

 

도시에서는 결코 여름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 달아오른 시멘트의 열기가 밤 늦게까지 사람을 괴롭히고, 더욱 탁해진 매연과 소음에 짜증이 더해지는 때가 여름밤이다. 도시의 여름밤이라면 끈적끈적한 불쾌감이 우선 연상된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놓고 저 죽음의 도시에서 버텨나간다.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그러나 시골에는 아직 여름밤이 살아있다. 한낮의 열기는 해가 지면서 이내 식고, 활짝 연 창문으로는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온다. 촛불을 켜고 누우면 사위는 깊고 조용한데 작은 풀벌레 소리만이 간간이 들린다. 어느덧 동편 산 위로 달이 둥실 떠오른다. 달빛은 가슴으로 보는 빛이다. 여름밤은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잔잔한 행복이 파도처럼 물결쳐 온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눈이 빨개지도록 이 아름다움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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