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국화 옆에서 / 서정주
누군지 이름이 기억하지 않지만 어느 물리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여기서 꽃 한 송이를 꺾으면, 저 멀리 있는 별이 흔들린다."
아마 이물리학자는 우리 우주계가 서로간의 만유인력에 의해 얽혀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물질세계만 이렇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세계나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세계도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불교에서도 '一中一切多中一'(하나 속에 모두가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이라고 한다.
지금은 우리가 분명히 알지 못하고 단지 감만 잡고 있을 뿐이지만 우주에서 모든 존재는 전체의 일부분임을 희미하게나마 안다. 아무리 미소한 존재일지라도 그 안에는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
따라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현상들이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은 없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연결 고리에 의해만물은 생성 변화를 계속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의 소쩍새 울음 소리가 필요했고, 한여름의 천둥소리도 필요했다.꽃 한 송이 조차 온 우주가 협력해서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태초의 빅뱅이 있어야 했다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모든 존재가 고귀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올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밤중 천둥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는데 문득 서정주님의 이 시가 떠오른다.
주변에서명멸하는 사건들, 사소해 보이는 일상사들이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어찌 아무 의미없는 것들이 있겠는가.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은 분명 필연의 법칙이 있었음에 틀림 없다고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 비밀을 이해하기에 내 지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산다는 것의 신비함에 대해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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