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4

지혜로운 노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80세 생일을 맞아 노숙자들을 초청해 아침 식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리고 미사에서는 "노년이 지혜롭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또한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고도 고백했다. 아마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쌓인 시기가 노년이다. 아는 것도 많고 세상 경험도 풍부하니 노년이 되면 자연스레 지혜로워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아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지식과 경험이 족쇄가 되어 옹고집만 더 생긴다. 주변에 나이 든 사람을 떠올려보면 안다. 늙으면 몸만 아니라 정신도 굳어진다. 제 세계관에 갇혀 버리는 것, 이것이 노년에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은 말랑말랑하다. 버드..

참살이의꿈 2016.12.20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 허만하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 허만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되어야 날개를 편다." 이 시와 무슨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득 헤겔의 이 말이 떠올랐다. 높고 밝은 세계는 정신의 빈곤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도시의 달동네, 꼬챙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의 힘을 생..

시읽는기쁨 2016.11.15

정신의 유연성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할 일이 생각이 굳어지는 것이다. 늙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과신하게 되고 그것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자주 한 "그거 내가 해 본 건데"라는 식의 건방진 발언도 나온다. 다 생각이 굳어진 결과다. 반면에 젊다는 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른 걸 배척하지 않는다. 아직 나와 외부를 가르는 벽이 완성되기 전이다. 사고방식이 경직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부드럽다가 늙으면 딱딱해지는 건 자연의 원리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모임에 나가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보인다. 큰소리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과신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른다. 젊은 때는 호기로나 보이지 늙어서는 ..

참살이의꿈 2015.01.29

의식의 진화

알,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인간 정신의 성숙 단계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연속적이지만 전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엄청난 도약이다. 어느 순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새로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옛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알의 단계 알은 0차원의 점이다. 그러나 알도 역시 하나의 생명체면서 세계다. 그 안에는 미래의 모든 가능성이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시공간을 지각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알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 수준이다. 인간 중에도 의식 수준이 여전히 알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바깥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좁은 세계를 우주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그러니 감히 알에서 깨어 나오려는 발상을 하지 못한다. ..

참살이의꿈 2009.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