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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폭력 냄새나는 말들

전원마을, 푸른마을, 강변마을… 아파트 단지 이름들은 대부분 예쁘다. 그런데 그 이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름으로 얼마나 커다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전원마을은 전원을, 푸른마을은 푸름을, 강변마을은 강변의 풍경을 해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해안도로를 지나며 만나는 간판들도 마찬가지다. 노을횟집은 노을을, 갯벌민박은 갯벌을, 등대편의점은 등대를 가리고 있다.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그 폭력성을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간판의 폭력성은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지만 도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도회지의 간판들은 폭력성을 넘어 잔인함까지 드러낸다. 생 오리 철판구이, 돼지 애기보, 새싹 비빔밥, 뼈 발린 닭… 같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잔..

길위의단상 2005.03.04

[펌] 당신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예수쟁이이다. 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정 이런 식의 약간은 자기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지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는 너무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 따라서 진실로 예수라고 하는 한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주변인이었던 기독교의 창시자의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주변성을 자기 정체성 안에 통합해 넣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비천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줄 모르는 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거하여 자신을 옭죄던 봉건성을 기독교라는 각성의 형식으로 극복했던 1세대 기독교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

길위의단상 2004.11.29

[펌] 신문 칼럼

한겨레신문(1/12)에 실린 칼럼 두 편을 옮깁니다. 다시는 아이가 되지 말렴 / 오수연(소설가) 어른이 되면 아이가 아니다. 아이가 아니어도 괜찮아서 나는 나이든게 다행스럽다. 어린 시절 나는 죄수였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하는 날, 어머니는 아기로만 알았던 막내가 또래들 중 키가 큰 편이라서 놀랐다. 나는 키 순서에 따라 뒷줄에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수십 번 하고, 구령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 마찬가지로 뒷줄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린이들의 지력과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 45분의 수업이 15분의 휴식 시간을 두고 반복되었다. 받아쓰기가 거의 전부였던 수업 내용이야 둘째치고, 수업 시간 동안 우리는 짝을 건드려도, 창 밖..

길위의단상 2004.01.13

[펌] 신문 칼럼

한겨레신문 신년호에 실린 칼럼 두 편을 옮깁니다. 경제종교 / 황대권(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오늘 아침 신문을 들추다가 열두 살 어린 아이가 천만 원을 모았다는 책을 선전하는 광고를 보고 가슴이 덜컥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어른들의 광포한 돈 놀음이 아이들의 영혼까지 갉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아이가 천만원씩이나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단돈 만원에도 신의를 밥 먹듯 저버리는 세상 인심을 모르고 이런 일을 기획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아주 어릴 때부터 돈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겠지. 아직 읽어보지도 않고 책에 대해 긴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격적인 광고카피만으로도 ..

길위의단상 200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