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펌] 신문 칼럼

샌. 2004. 1. 13. 13:35

한겨레신문(1/12)에 실린 칼럼 두 편을 옮깁니다.


다시는 아이가 되지 말렴
/ 오수연(소설가)


어른이 되면 아이가 아니다. 아이가 아니어도 괜찮아서 나는 나이든게 다행스럽다.
어린 시절 나는 죄수였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하는 날, 어머니는 아기로만 알았던 막내가 또래들 중 키가 큰 편이라서 놀랐다.
나는 키 순서에 따라 뒷줄에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수십 번 하고, 구령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 마찬가지로 뒷줄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린이들의 지력과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 45분의 수업이 15분의 휴식 시간을 두고 반복되었다.
받아쓰기가 거의 전부였던 수업 내용이야 둘째치고, 수업 시간 동안 우리는 짝을 건드려도,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려도 안 됐다.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앞만 똑바로 바라보며 꼼짝도 말아야 했다.
4학년 때부터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도시락을 싸 갖고 가서 점심 먹고 5교시 수업을 들었고, 6학년 때는 토요일만 빼고는 6교시까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책상을 뒤로 밀고 빼곡이 꿇어앉아 마룻바닥에 초나 왁스칠을 하고 마른 걸레로 문질렀다. 선생님께 청소 검사를 받고는, 퇴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에 교문을 나섰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 만화 보고 저녁 먹고, 숙제하다 보면 한밤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른바 자율학습을 하느라고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거나한 취객들과 함께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며 귀가했다. 방학 때마저 자율학습이 있어 좀 늦게 갔다 일찍 올 뿐 학교에 다녔고, 국립묘지에 잡초 뽑으러 가기 등 공식적인 소집일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있었다.
숙맥이라 그런지 사춘기의 방황을 그린 영화나 소설을 보면 나는 이해가 안 갔다. 무엇보다 그럴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산다면 고시 합격이야 물론이고 도가 트고야 말 것 같다.
12년 동안 학교에서 평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오로지 똑바로 앉아 있거나 가끔 조회 시간에 똑바로 서 있었으니, 스님들의 면벽 수행이 이보다 고될까.
한번도 본 적 없는 짚신벌레와 아마 평생 볼 일 없을 수소 발생 실험 따위를 공책에 그려서 달달 외우고 또 외우는 학습 방식은, 목에서 피를 쏟는 예인들의 수련만큼이나 처절하지 않은가.
내 속에 그런 인내와 끈기가 있었다니 놀랍다. 나처럼 12년을 견뎌낸 학생들이 안 그런 학생들보다 많았다니 더욱 그렇다. 보통 어른들은 도저히 못할 일을 그 많은 아이들은 해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고, 원하지도 않았다. 다른 길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학교에 있어야 정상이었고, 학교말고 다른 데 있으면 눈총이나 질책을 받았다. 또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외워야 했으며 다른 일을 하면 야단을 맞았다. 나는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장소에서 단 하나 주어진 일을 했다. 그때 시간이 한없이 늘어졌던 이유는 내가 어려서가 아니라 너무나 지루해서였다.
수도자나 고시생 아닌 사람이 그만큼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고행을 해야 하는 경우는, 감옥의 죄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찌 교육인가. 어리다는 것은 죄이고 공부는 징벌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두고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노역을부과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라서 그것을 해내야 했던 것뿐이다.
나는 살아남은 장기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밤열두 시까지 학원에 다닌다는 요즘 아이들은 더하다. 이제는 담장도 없이 모든 상가가 학교다.
무지막지하게 외우기만 하면 됐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창의력이며 사고 방식마저 시험 과목이므로, 아이들의 마음 속에 학교가 들어가 있고 꿈속에서도 수업은 진행중이다.
사회 전체가, 일상생활 전반이 아이들의 감옥이다.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오래된 뮤직 비디오 <벽〉에는 아이들이 차례로 학교에 들어가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나중에 소시지로도 나올 것 같지 않다.
나는 달리 해줄 말이 없다. 아이들아, 빨리 커서 다시는 아이가 되지 말렴.


군대가 없어도 나라는 안 망한다 / 김용한(성공회대 외래교수)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나라는 군대가 지키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군대가 없어도,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는 안 망한다. 군대가 있어도, 외국군이 쳐들어오지 않으면, 모든 군인이 총을 놓고 총파업을 벌여도 나라는 안 망하게 돼 있다.

그런데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아도,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우선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죽으면, 군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국가의 명령에 복종해가며 총칼과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채 나라를 지켜도,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그것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놓고 기르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집에 가서 애나 보라”며 애 보는 일을 군인들이 하는 일보다 하찮은 일로 여기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누군가 애를 보지 않으면, 그 애들이 굶어 죽거나 도랑에 빠져 죽거나 차에 치어 죽거나 동물에 물려 죽게 돼 있고, 그러면 군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나라를 지켜도 길게 잡아 100년 안에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나라가 더 빨리 무너지는 길도 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전국적으로 총파업을 하면, 1년도 되지 않아 온 나라가 전염병이 창궐해 모든 국민이 괴질에 걸려 죽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라는 무너질 것이다.
모든 노동자, 농민이 노동과 생산을 모두 중단해 버려도, 나라는 군사력과 관계 없이 무너지게 돼 있다.
중국 쪽에서 날아오는 황사에 온갖 유독 물질이 섞여 날아와 대한민국을 뒤덮어 버려서 온 국민이 죽어도 나라는 없어진다.
국가가 실업자,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해서 사회 불만자가 창궐하도록 방치하여, 20:80, 10:90, 5:95의 사회가 되면, 나라는 무너지게 돼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이 지금 나라 무너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라를 살리는 길로 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한국군이 지키고, 한국군의 부족한 부분을 미군이 보충해 주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사이비 신앙이다. 나라는 온 국민이 함께 지키는 것이다.
그 많은 국민 가운데, 안보에 가장 큰 일을 하는 것이 군대라는 것도 큰 착각이다. 군대는 없어도 된다.
대한민국에 군대가 있기 때문에, 게다가 미군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미국이 안 쳐들어오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안 망하는 것인가 강대국들이 쳐들어오면 대한민국에 군대가 있어도,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외국군이 하나도 없는 북한을 쳐들어가지 않는 것은 북한군이 두려워서겠는가

나라를 살리는 길은, 군대를 강화하고, 군사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 평등 세상을 만들고, 나라 밖에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외교를 잘 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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