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열다섯 해를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부모님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났을 뿐, 십 대와 이십 대의 대부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신 분이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철없던 그때는 당연하다고 여겼을 뿐 고마움을 몰랐다. 오히려 투정을 많이 부렸다. 내가 그 당시 외할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손주를 돌보는 게 얼마나 큰 고역인지를 안다. 나만이 아니라 동생 넷도 전부 객지에서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컸다. 사춘기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다. 외할머니는 백수를 하셨으니 장수하셨다. 우리 동네에서 백 세를 넘기신 분은 외할머니가 유일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치매에 걸려서 모시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나는 아무 도움도 되어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