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 27

논어[210]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주군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무엇보다다도 이름을 바로잡아야지!" 자로가 말했다. "그럴 수 있을까요? 실지와는 먼 이야기입니다. 왜 그것을 바로잡는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무식쟁이야! 너는! 참된 인간은 모를 바에야 잠자코 있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예법이나 음악이 융성하지 못하고, 예법과 음악이 융성하지 못하면 형벌이 옳게 되지 못하고, 형벌이 옳게 되지 못하면 백성들이 몸둘 곳조차 없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인간은 이름을 붙이면 꼭 그대로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면 꼭 그대로 행할 수 있다. 참된 인..

삶의나침반 2016.08.31

봉평 메밀밭

메밀꽃 축제를 앞둔 봉평은 이제 막 메밀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분위기는 덜 살아도 축제 전이라 한산해서 좋았다. 파란 가을 하늘에 이끌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러나 강원도로 들어서니 잔뜩 흐려지면서 비까지 뿌리기 시작했다. 선재길을 걸으러 월정사에 갔더니 어제 내린 비로 길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벌써 세 번째다. 왠일인지 선재길과는 인연이 트이지 않는다. 대신 봉평에 들러서 마을 둘레길을 걸었다. 일찍 파종한 메밀은 꽃이 피기 시작했다. 둘레길은 이효석 문학관, 이효석 생가터 등을 지나 이효석 문학의 숲을 돌아오게 되어 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내내 비가 흩뿌렸다. 그러나 우산을 쓰고 산책하는 재미도 괜찮았다. 길은 중간에 끊어지기도 하는 등 관리 부..

사진속일상 2016.08.30

쌍무지개 뜬 저녁

도시에 살아서일까, 아니면 실내 생활이 늘어서일까, 무지개를 만날 일이 좀체 없다.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어른이 되니 더 희소가치가 높아진 무지개다. 둘째한테서 무지개가 떴다는 연락이 왔다. 얼른 집 밖으로 나가 보니 무척 선명한 쌍무지개였다. 아뿔싸, 급히 나오느라 카메라를 잊었어,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오니 이미 제2 무지개는 흐릿해지고 있었다. 담처럼 둘러싼 아파트 사이로 겨우 한 장을 찍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잔 비가 흩뿌리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폭염이 물러갔다. 아무리 기세를 떨쳐도 한철일 뿐,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연민의 눈빛일까, 존재의 가련함을 기억하라는 듯 애틋하게 무지개가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6.08.29

여행 / 박경리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여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

시읽는기쁨 2016.08.29

스타트렉 비욘드

IMAX 3D로 보니까 훨씬 더 실감이 난다. 일반 화면으로 봤던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비욘드'를 더 좋게 본 이유는 화면 효과 때문임을 인정한다. 스토리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솔직히 아쉬운 점이 많다. 만화 같은 액션 장면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전투함이 아니라 탐사선이다. 그렇다면 미지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장면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 외계인과 선악 대결의 결말이 뻔한 싸움을 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SF로도 충분히 족하다. 그래도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와 창의적인 장면도 있다. 적의 벌떼 공격을 음악으로 물리치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호를 재건조하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영화에서 ..

읽고본느낌 2016.08.28

경안천 수크령

수크령은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다. 가을이 무르익어야 나타나는 억새나 갈대와 달리 수크령은 늦여름에 등장해 일찍 가을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안천 청석공원에 수크령이 한창이다. 바람이 불면 산책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손짓처럼 하늘거린다. 수크령은 더위가 물러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강아지풀과 닮았으나 분위기는 억새과다. 다시 멋진 계절이 오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6.08.27

더위 가신 경안천을 걷다

희한하다. 어젯밤에 반가운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일변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 느낌이 다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무더위와 땡볕에 바깥출입 엄두를 못 냈는데 오늘은 가벼운 배낭 매고 경안천으로 나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올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1994년의 혹서를 아직도 잊지 못하지만 2016년도 그에 못지 않았다. 한 달 넘게 비다운 비 한 번 내리지 않아 체감 더위는 오히려 1994년보다 더한 것 같다. 올해는 에어컨 신세를 톡톡히 졌다. 그래서 깜짝 찾아온 가을 날씨가 더없이 반갑다. 경안천 천변길을 즐겁게 왕복했다. 목현천 주차장에서 경안천으로 나가 오포교를 돌아오는 코스다. 이번에 트랭글로 확인해 보니 12km가 약간 넘는 거리다. 시멘트 길이 많지만 몇 차례 흙길도 나온다..

사진속일상 2016.08.26

논어[209]

중궁이 계씨의 총재가 된 후 정치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하의 앞장을 서고, 잔허물은 못 본 체하고, 잘난 인물을 골라 쓰도록 하여라." "어떻게 골라야 잘난 인물을 추려 쓸 수 있을까요?" "네가 아는 인물을 골라 쓰면 되지. 네가 모르는 인물이라도 남들이 버려 둘 줄 아느냐!" 仲弓 爲季氏宰 問政 子曰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曰 焉知賢才而擧之 曰 擧爾所知 爾所不知 人其舍諸 - 子路 2 정치 일선으로 나가는 중궁에게 주는 말씀이다. 그중에서도 중궁은 '잘난 인물[賢才]'을 어떻게 고를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정치는 인사(人事)가 중요하다. 공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네가 아는 사람 중에서 골라 써라." 그러면 훌륭한 인물이 모여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세상을 너무..

삶의나침반 2016.08.24

심심한 삶

은퇴한 이후 내 삶은 심심하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퇴직 이후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한다. 심심한 삶은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일을 만들지 않고 얼마나 충분히 심심해지느냐가 내 목표였다. 그러니 퇴직 이후의 삶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하루 빈둥거리며 놀겠다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다. 다행히 연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큼 팔자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심심함이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삶이다. 관계에서 기쁨을 찾는 게 아니라 홀로 자족하는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지루해 보이겠지만 심심한 삶은 그리 못된 게 아니다. 나름대로 은근한 행복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나는 단순함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

참살이의꿈 2016.08.23

양철북

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롭다. 10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때이므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 시절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면서 공감한다. 은 이산하 시인의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꿈인 고등학생 철북이 구도승인 법운스님과 전국을 순례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배운다. 구체적인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지내고 얘기하며 자연스레 눈을 떠간다. 소설에서 철북이 스님과 나누는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고등학생의 지적 수준은 이미 뛰어넘었다. 작가를 꿈꾸는 소년의 엄청난 독서량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늘 선문답 같은 말이 ..

읽고본느낌 2016.08.22

여보라는 말 / 윤석정

연애시절, 나는 은근슬쩍 당신에게 여보라고 불러봐 했더니 그 말이 어색했던 당신은 여보를 거꾸로 바꿔서 보여? 라고 묻고는 딴청을 피웠다 나는 느닷없는 물음에 당황스럽기만 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당신은 나지막하게 사랑해라고 했다 결혼을 앞두고 사소한 이유로 다투던 날 당신은 내가 되어도 내가 아니 되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나는 먹먹해져서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니 된다고 당신이어야만 한다고 소리쳤다 당신은 내 마음이 보여? 라고 묻고는 뒤돌아섰다 나는 눈을 감고 사랑해라고 속으로 속으로 되뇌었다 당신은 이 세상 기꺼이 나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 깜깜한 나에게 전부를 보여준 당신 당신은 겨울 꽃처럼 단아한 신부가 되었고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어둔 세상에 살지라도 당신이 내민 손을 꼬옥 붙잡고 가겠다..

시읽는기쁨 2016.08.21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

리우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전에 비해서 올림픽 열기가 덜한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성숙해 가고 있다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이젠 메달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이 오염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무대는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최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경기가 끝난 뒤 우리나라 어느 선수가 한 말이 기억난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잖아요. 그래서 저도 함께 즐기려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은 아름답다. 너무 금메달에 집착하면 추해 보인다. 차라리 아름다운 패배가 더 멋지다. 이번 리우올림픽 성화 ..

길위의단상 2016.08.20

논어[208]

자로가 정치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먼저 실행하고, 먼저 노력하라." 좀 더 청한즉 "싫증을 내지 마라." 子路問政 子曰 先之 勞之 請益曰 無倦 - 子路 1 공자의 맞춤식 가르침의 하나일 것이다. 공자의 대답에서 자로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자로는 리더형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솔선수범하는 면이 부족할 수 있다. 정치가 아닌 다른 분야를 물었더라도 공자의 대답은 비슷했을 것 같다.

삶의나침반 2016.08.19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자책이 많이 된다. 선생으로서의 내 행적이 너무 후회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사랑과 열정의 부족이다. 30년 넘게 선생 시늉을 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껴안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을 전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에 설 때 아이들과의 사이에 늘 벽을 느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고 경력이 쌓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교육의 '교'자도 모른 채 선생 흉내를 낸 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되자면 우선 ..

읽고본느낌 2016.08.17

보살 / 김사인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도 안 고프고, 몇 날을 나도 힘도 안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도 개뿐하요. 그저 좋아 콧노래가 난다요. 숟가락 건네주다 손만 한번 닿아도 온몸이 다 찌르르 허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 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 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인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허요. 좀 웃는가 싶으면, 세상이 봄날같이 환해져라우. 그 길로 죽어도 좋을 것 같어져라우. 남들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면 혀라우. - 보살 / 김사인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오염된 세상에서 이런 건 뭐라 불러야 할까. 인간이 아가페의 흉내를 낸다면 아마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시읽는기쁨 2016.08.16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영화 '곡성'에서 효진이 아빠에게 절규하며 부르짖는 말이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 남아 있는 건 이 한 마디밖에 없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경찰인 종구는 악귀가 든 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사건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딸을 돕는다는 게 오히려 더 사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악마와 한 편인 무당을 불러 굿을 해서 효진을 괴롭힌다. 마지막에는 딸을 살릴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만 좋았을 뿐 현상의 이면을 볼 줄 몰랐던 종구는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한다. 효진의 "뭣이 중헌디?"라는 외침이 그래서 더욱 애절하다. 종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열심히 산다는 게 결국 악의 세력에 복무하는 결..

참살이의꿈 2016.08.15

논어[207]

증선생이 말했다. "참된 인간은 학문을 통하여 벗과 사귀고, 벗을 사귀어 사람 구실의 도움이 되도록 한다."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 顔淵 19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증삼의 말은 너무 교과서 같다. 더 심하게 말하면 교조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름에 선생의 칭호인 '자(子)'를 붙인 것도 그렇다. "군자는 학문으로 벗과 사귀고, 벗으로 인(仁)을 이루는 데 도움을 받는다." 지당하지만 어딘지 편협한 느낌이다. 인은 공활한 하늘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쳐다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6.08.13

곡성

영화 '곡성'을 본 지는 꽤 되었다.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게 목적이었는지 섬뜩한 장면들이 뒤엉켜 그때는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비슷하다. 거북한 장면을 배격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두 대사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다그치는 아빠에게 효진이 한 말이다. "뭣이 중헌디?" 이 절규는 당시 상황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헛다리를 짚으며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분노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무당으로 나오는 황정민의 말이다. 왜 내 딸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느냐는 곽도원의 질문에, 희생자가 되는 건 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과 같다는 대답이다. 악의 세력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걸리기를 기다..

읽고본느낌 2016.08.12

공부하면 는다

지지옥션배 바둑대회는 남자 기사와 여자 기사의 단체 대항전이다. 각 12명씩 연승 방식으로 대전한다. 남자와 여자의 기력 차이가 있으니 남자는 40세가 넘어야 참가할 수 있다. 지금 10회 지지옥션배가 진행되고 있는데 1장으로 나온 서봉수 9단이 9연승을 했다. 어제 오유진 2단에게 져서 10연승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9연승도 대단한 기록이다. 바둑에도 전성기가 있다. 타이틀 홀더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다. 30대가 되면 힘을 못 쓴다. 머리로 하는 싸움인데도 바둑 역시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대 바둑의 짧은 제한시간에 있다. 대전 방식의 문제가 크다. 나이가 들면 집중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두뇌 회전이 젊은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길위의단상 2016.08.10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처음엔 풀 밑으로 숨기 바빴지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며칠 지나니 이제는 살랑살랑 마중을 오네 먹이 몇 번 주었을 뿐인데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 거야 길든다는 말 길들인다는 말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다는 거였어 살랑살랑 길을 들인다는 거였어 -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서 '길들인다'는 게 뭔지 묻는다. 길들여져 있지 않아서 같이 놀 수 없다고 여우가 말했기 때문이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넌 아직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꼬마들과 다를 바 없는 한 꼬마에 불과해. 그러니 나에겐 네가 필요없어. 또한 너에게도 내가 필요없겠지.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시읽는기쁨 2016.08.09

보석사 은행나무

수령이 1,100년 가까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다. 886년, 보석사(寶石寺)가 창건될 때 조구대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나온 금으로 불상을 만들고 세운 절이 보석사다. 조구대사와 다섯 제자는 절을 창건한 기념으로 각각 한 그루씩 은행나무를 절 앞에 심었다고 한다.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는 한데 합쳐져 자라 지금과 같은 거목이 되었다. 그러나 가운데 줄기는 굉장히 오래된 게 확인되지만 주변의 줄기는 나이 차가 있어 보인다. 아마 뒤에 새로 돋아난 줄기가 아닌가 싶다. 이 은행나무의 키는 40m, 줄기 둘레는 10.4m로 용문사 은행나무에 비견된다. 뿌리는 100여 평에 걸쳐 땅 속에 퍼져 있다고 한다. 금산의 자랑거리이며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년의나무 2016.08.08

이열치열 산행

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날씨다. 이번 여름은 에어컨 신세를 톡톡히 지고 있다. 트레커 산행은 이 더위의 한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는다. 취소되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다. 이번 산행지는 금산 성치산이었다. 열두개의 폭포가 있는 무자치골을 택했지만 이 지역은 장마 때도 비가 거의 안 왔다고 한다. 힘 없는 오줌줄기 같은 물만 흐르는 게 고작이었다. 수량만 넉넉하면 괜찮은 풍경을 만들 것 같다. 바삐 지나치느라 1에서 4폭포는 보질 못하고, 5폭포부터 12폭포의 모습만 힘들게 담아 보았다. 제 5폭포[죽포동천폭포] 폭포 아래에 새겨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청뢰(晴雷)'라는 글씨처럼 십이폭포를 대표하는 폭포다. 파란 대나무처럼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춰져, 마치 수면이 대나무숲처럼 보여 '..

사진속일상 2016.08.07

논어[206]

자공이 벗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심으로 타일러서 잘 인도하도록 하되 듣지 않거든 그만두어라. 모욕을 당하게 되도록까지 할 것은 없느니라." 子貢 問友 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之 無自辱焉 - 顔淵 18 상당히 현실적인 조언이다. 꼭 친구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말이다. 책임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그걸 사랑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 발 물러서는 게 옳다. 다투게 되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만 서로 고집하는 것이다. 결국 관계도 파탄 난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6.08.05

피로사회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선생이 쓴 우리 시대를 진단하는 철학 에세이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소책자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서양 문화의 비판서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생은 우리 시대를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과거의 규율사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규율사회는 이미 사라졌다. 대신 피트니스 클럽, 외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가 등장했다. 이 사회의 주민은 더 이상 '복종적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그런데 성과사회는 긍정성 과잉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

읽고본느낌 2016.08.04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되는 입구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 있다. 나이 든다고 절대 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더 철딱서니가 없어지고 옹졸하게 된다. 그런 내 꼬락서니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서글픈 일이다. 몸이 쇠약해지는 건 차라리 괜찮다.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인격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 건 젊었을 때의 착각이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연상하면 우선 여유가 떠올랐다. 시간의 여유와 함께 당연히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관용과 이해, 그리고 흘러가는 세상을 관조하는 힘은 노년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친구는 별로 없다. 늙으면서 가장 경계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되는 일이다. 인생의 경험이 옹고집으로 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자기 세계에..

참살이의꿈 2016.08.03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씨감자로 배를 채운 저녁나절처럼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아려오는지 쥐오줌풀, 말똥가리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통발, 개차즈기, 개씀바귀, 구리때,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못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이름들뿐인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굴,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왜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낯뜨겁고 부끄러운 이름들뿐인지 쥐꼬리망초, 명주실풀, 며느리밥풀, 좁쌀풀, 속속이풀, 송장풀, 주름잎, 쐐기풀, 쑥부지깽이, 개밥풀, 겨우살..

시읽는기쁨 2016.08.02

베란다 풍란

풍란의 개화는 종잡을 수 없다. 기다리면 애만 태우게 하다가, 신경을 끄고 있으면 꽃을 피워 깜짝 놀라게 한다. 어떤 조건이 꽃을 피우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어찌 됐건 올해는 제일 많은 꽃을 피웠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을 오늘에야 거실로 옮겼다. 풍란의 향기를 옆에 두고 싶어서다. 그동안은 어린 손주가 와 있어서 가까이 들여놓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풍란은 잎도 꽃도 무척 아름답다. 특히 늘어진 꽃대의 선이 일품이다. 널 바라보는 즐거움을 당분간은 누리게 되겠구나.

꽃들의향기 201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