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 28

논어[205]

번지가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남을 사랑해야 한다." 앎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을 알아야 한다." 번지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곧은 사람을 골라 굽은 자 위에 두면 굽은 자를 곧게 만들 수 있다. 樊遲 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 未達 子曰 擧直조諸枉 能使枉者直 - 顔淵 17 이 대목을 보며 문득 헤세의 가 떠올랐다. 우리말로는 '지와 사랑'으로 번역된 책이다. 번지가 스승에게 물은 두 가지가 헤세가 다룬 주제와 닮았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자는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愛人[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과도 상통한다. 그리고 사람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말한다. 결국 행위와..

삶의나침반 2016.07.30

에필로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타계한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과학자들 중에서 세이건만큼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던 사람도 없었다. 그의 저서 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판매된 과학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TV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과학 다큐멘터리가 공전의 인기를 누린 건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신비를 접하고 꿈을 키웠다. 이 모든 것이 칼 세이건 개인의 능력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만큼 다방면에서 자질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나도 를 비롯해 등 여러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의 임펙트가 워낙 강해 뒤에 나온 책들이 시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

읽고본느낌 2016.07.29

탄식 / 손세실리아

사경을 헤맨 지 보름 만에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기시던 날 효도한답시고 특실로 모셨다 - 아따 좋다이 근디 겁나게 비쌀 턴디 - 돈 생각 말고 푹 쉬어 - 후딱 짐 싸라 일반실로 내려가게 - 근천 그만 떨어 누가 엄마한테 돈 내래? 뜬눈으로 간병한 사람은 안중에도 없지? 늙으면 남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 안다더니 틀린 말 아니네 설득하고 대꾸하고 통사정하다가 풀죽은 넋두리에 벼락 맞은 듯 기겁해 황급히 입원 도구를 꾸렸다 - 아가 독방은 고독해서 못써야 통로 끝집 해남떡이 베란다서 떨어진 것도 다 그 때문 아니것냐 - 탄식 / 손세실리아 오랜만에 시집을 한 권 샀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이다. 손 시인의 시는 참 쉽다. 술술 읽힌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작은 조약돌처럼 시들이 예쁘다. 이 시 '탄식'에서..

시읽는기쁨 2016.07.27

부채

친구한테서 부채를 선물 받았다. 서예가 취미인 친구라 손수 붓글씨를 적었다. 좋아하는 글귀가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아무 거나 괜찮다 했더니 공자님 말씀을 넣어 주었다. 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하는 데는 이롭다. 요즘은 이런 부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한테는 딱 맞는 용도가 있다. 바둑 둘 때다. 한 손으로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며 멋스레 바둑을 두고 싶다. 바둑 한 판이 주는 교훈이 이 구절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속일상 2016.07.26

까불지 마

허리가 삐끗해서 열흘째 바깥나들이를 못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겪는 연례행사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 이젠 내 나름대로 통증에 대처하는 방법도 가지고 있다. 이놈이 오면 모든 게 올스톱이다. 다리 근육이 땅기고 허리에 힘을 못 쓰니 정상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심하면 세수하기도 어렵고 똥 눌 때 힘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도 디스크로 고생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며칠간 결근을 했지만 백수인 지금은 걱정할 게 없다. 그저 누워 있으면 된다. 전에는 병원도 다니고 침도 맞고 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터득했다. 낫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동소이하다.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떠나간다. 정상으로 돌..

길위의단상 2016.07.24

논어[204]

번지가 기우제 봉우리 언저리에서 선생님을 따라 노닐 적에 물었다. "인격을 높이고 잘못을 씻고 멍청하지 않도록 하자면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좋은 질문을 하는구나! 애는 남 먼저 쓰고, 소득은 뒤로 미루는 것이 인격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 자기의 잘못만을 따지고 남의 잘못은 따지지 않는 것이 잘못을 씻는 방법이 아닐까! 불쑥 분을 못 참고 몸을 그르쳐 걱정을 부모에게까지 끼친다면 멍청한 짓이 아닐까!" 樊遲 從遊於舞雩之下曰 敢問 崇德 修慝 辨惑 子曰 善哉問 先事 後得 非崇德與功其惡 無功人之惡 非修慝與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 顔淵 16 인격 도야의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단정형이 아니라 "~이 아닐까?"라는 형식의 권유형이다. 제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어법이다...

삶의나침반 2016.07.22

채식주의자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독자가 받는 감동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는 전문가는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 한강은 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 영미권에서는 꽤 권위 있는 상인 것 같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소식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경제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취에 비해 문학이나 사상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많이 뒤처져 있었다. 수상을 반기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에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느낌을 글로 옮기려니 굉장히 막막했다.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이 품고 있는 함의를 읽어내기가 내 수준으로는 어려웠다. 큰 상을 받은 작품을 내 멋대로 ..

읽고본느낌 2016.07.21

평상심

중국 바둑 기사 중에 스웨(時越) 9단이 있다. 1991년 생으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다. 지금은 랭킹이 좀 떨어졌지만, 전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 기사 킬러로 유명하다. 삼성화재배였던가 큰 번기 승부를 할 때 스웨 9단에게 기자가 물었다. 대국 사이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스웨 9단은 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기사가 스웨 9단이다. 스웨 9단이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 바둑의 본질은 무엇인가? "의 논리가 바둑과 비슷하다. '변화'가 의 초점이자 바둑의 핵심이다." - 마음에 남는 다른 책은? "와 이다." - 스스로를 '싸움꾼'으로 묘사한 적이 있..

참살이의꿈 2016.07.19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옛날 여름 저녁 풍경이 담박하게 펼쳐진다. 평안도 토속어가 감칠 맛 나는 백석 시다. 이때 도시라면 창문 닫아걸고 에어컨을 켤 것이다. 어찌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당 멍석자리에 누워 모깃불 연기 맡으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그때가 아련하다. 할머니의 부채 바람이 낯을 간지렸고. 어른들의 알 듯 모를 듯한 세상..

시읽는기쁨 2016.07.18

민중은 개돼지

교육부의 한 고위직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다가 공분을 샀고, 결국은 파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실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민중은 개돼지로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 "신분제는 공고화되어야 한다." 기자와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인 말이었다. 내가 이번 사건을 두려워하는 건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이런 정서가 보편적이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는 문제의 근본에는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1%의 엘리트가 99%의 민중을 먹여 살린다는 개념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99%의 민중은 어리석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이미 계급사회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돼지' 발언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

길위의단상 2016.07.17

낯선 모교

고향에 내려간 길에 모교에 들렀다. 헤아려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2년이 흘렀다. 가늠하기 힘든 까마득한 세월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일 같기도 하다. 나이 들고 옛 자리를 찾아보는 일은 어디든 착잡하기만 하다. 옛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된 검은색 옛 교사는 진즉에 사라졌다. 운동장 귀퉁이에 서 있던 큰 느티나무도 운동장이 확장되며 오래전에 베어졌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현재와 연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교인데 너무 낯설다. 대신 학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모던해졌다. 시설 투자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작년에는 강당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전체 학생수는 66명이다. 한 학년에 겨우 한 학급씩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면내에 있었던 세 학교가..

사진속일상 2016.07.15

논어[203]

자장이 선비는 어떻게 되어야 사리에 툭 틔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어떤 것 말이냐? 네가 사리에 툭 틔었다는 것은." 자장은 대답했다. "나라 안에서는 이름을 날리고, 집안에서도 이름을 날려야 합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것은 이름을 날리는 것이지 사리에 툭 틘다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사리에 툭 틘다는 것은 인품이 곧고 바른 것을 좋아하며, 남의 말과 얼굴빛을 살피면서 항상 남의 밑에 들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라에서도 사리에 툭 틔고, 집안에서도 사리에 툭 틔게 된다. 대체로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얼굴빛은 사람답게 꾸미면서 행동은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자기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라에서도 이름은 날리고 집안에서도 이름은 날리게 되는 거다."..

삶의나침반 2016.07.14

단촌리 느티나무(2)

집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지만 8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는 나무다. 천연기념물 273호로 고향의 자랑거리인 큰 느티나무다. 수령이 약 700년이고, 줄기 둘레는 10m에 이르는 거목이다. 중심에 서면 지름이 20m가 넘게 가지가 뻗어 있어 하늘을 다 가린다. 탄탄하고 균형 잡힌 외형에 생육 상태도 무척 양호하다. 단촌리의 정자나무로 매년 음력 8월 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 밭에서 몇 사람이 일할 뿐 동네는 조용했다. 700년 전이면 조선이 건국된 시기다. 인생 백 년에도 수많은 풍파를 겪는데 이 나무는 얼마만 한 시련을 견뎌내고 이런 거인이 되었을까. 그러면서 수십 세대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뛰어놀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

천년의나무 2016.07.13

동적평형

일본의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쓴 책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을 소재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생물학 에세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내용 중에서는 생명을 정의한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다. 그 중심 개념이 책 제목으로 쓰인 '동적평형(動的平衡, Dynamic Equilibrium)'이다. 생명을 기계론적 사고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생명은 결코 부분의 총화가 아니다. 생명의 구성 요소를 모아서 합성한들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 바로 에너지와 정보의 출입이다. 모든 생명 현상은 에너지와 정보가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생명은 단순히 자기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넘어 '가변적이고 영속적인 시스템'이다. 생명은 흘러가는 강물 같은 흐름 가운..

읽고본느낌 2016.07.13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사과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뜨던 저녁이었다. 그 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듯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 -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얼마 전 ..

시읽는기쁨 2016.07.12

고향집 여름 화단

고향집은 언제 가도 화단의 꽃구경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물에 관한 한 어머니는 전문가시다. 언제 무슨 작물을 심을지, 동네 젊은 아낙들은 항상 어머니에게 묻는다. 꽃도 마찬가지다. 비결이 궁금하단다. 꽃은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늘 새롭다. 개체의 생멸이 온존재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꽃은 지는 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몸을 바꿀 뿐이다. 존재의 다른 양식일 뿐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들 서러움이 덜해질까. 늙으신 어머니가 꽃들 너머에서 자식에게 줄 곡식을 고르고 있다. 화단에 흰색 무궁화 세 그루가 새로 심어졌다. 키는 1m 남짓 되는데 매일 서너 송이씩 꽃이 핀다. 어머니는 그 꽃을 따서 뜨거운 물에 담가 우려내 마신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것이다. 이모 한 분이 뇌졸증으로 ..

꽃들의향기 2016.07.12

봉하마을

김해 요양원에 계신 이모를 뵙고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봉하는 평범한 농촌 마을인데 산에 박힌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가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는 두 바위 아래에 있었다. 당신이 바라본 방향과 가치관에는 동감했지만, 재임시 당신이 편 정책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대통령이었고, 진보의 희망이었지만 좌절하는 진보의 단초가 되기도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민중은 개돼지'라는 교육부 고위관료의 뻔뻔한 발언을 접하는 요즈음, 천둥 같은 당신의 목소리가 자꾸 그립습니다.

사진속일상 2016.07.11

진리의 역설

오래된 노트를 열어보다가 메모해 둔 찰스 비어드의 글을 보았다.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 1874~1948)는 미국의 역사학자로 역사 연구에 있어 객관적인 해석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 현대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학파인 상대주의 사관을 만든 사람이다. 이 사관은 역사 연구에서 완벽한 과거 복원을 불가능하고,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찰스 비어드는 평생 역사를 연구해서 '진리의 역설'로 불리는 다음 네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1. 하느님은 멸망시킬 자에게 권력을 줘 날뛰게 한다. 2. 심판의 맷돌은 더디게 돌지만 아주 작은 것까지 간다. 3. 벌은 꿀을 도둑질해서 꽃을 피운다. 4. 어둠이 짙어야 별을 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

참살이의꿈 2016.07.06

논어[202]

계강자가 정치에 대하여 선생님께 물었다. "만일 억지꾸러기들을 죽여서 바른 길로 나오도록 하면 어떨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정치를 하면서 왜 죽이자는 거요? 당신이 잘 하면 백성도 잘 할 것을! 윗사람의 인품은 바람이요, 아랫사람의 인품은 풀잎이니,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쓸리고야 말걸." 季康子 問政於孔子 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 顔淵 14 공자의 정치는 덕치(德治)다. 먼저 지도자가 군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잘 하면 백성도 잘 하게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공자의 머릿속에는 요순시대의 이상사회가 그려졌을지 모른다. 계강자가 공자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 공자는 말한다. 그..

삶의나침반 2016.07.05

엑시덴탈 유니버스

지은이인 앨런 라이트먼의 경력이 특이하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론물리학자면서 소설가이다. 매사추세츠공대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강의를 맡기도 했다. 통섭적 인간의 대표라 할 만하다. 이 책 는 과학과 인문학의 색깔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과학 지식을 기초에 깔면서 예술과 문학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우리가 우주를 대하는 일곱 가지 관점을 정리했다. 1. 우연의 우주[The Accidental Universe] 2. 대칭적 우주[The Symmmetrical Universe] 3. 영적 우주[The Spiritual Universe] 4. 거대한 우주[The Gargantuan Universe] 5. 덧없는 우주[The Temporary Universe] 6. 법칙의 우주[The L..

읽고본느낌 2016.07.04

관작루에 오르다 / 왕지환

붉은 해는 산을 의지해 다하고 누런 강은 바다로 들어가 흐르는데 천리 더 멀리 바라보고자 다시 더 한 층을 올라가네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 登관雀樓 / 王之渙 대칭의 조형미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주의 기본 속성이 대칭성이다. 과학자들도 자연의 대칭성을 주목한다. 거시나 미시 세계 모두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한시가 아름다운 건 대칭의 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율시의 생명은 대구(對句)라고 한다. 이 시가 좋은 예다. 왕지환은 당나라 때 시인이다. 이 시는 간결하고 쉽다. 은유도 무슨 의미인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인간적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인의 의지가 읽힌다. 세월은 흐르고 몸은 늙어가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정신만은 쇠하지 않는다. 인생은 쉼없이 배우고 ..

시읽는기쁨 2016.07.03

장가계(3) - 황석채, 원가계

장가계 여행 셋째 날은 황석채, 양가계, 원가계를 구경했다. 역시 오전은 쇼핑으로 보내고, 오후에 세 군데를 부리나케 돌아다녔다. 어제까지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지나가고 하늘이 깨끗해졌다. 이틀 전까지 계속 비 예보였는데 기적처럼 맑은 하늘이 열렸다. 이처럼 장가계 날씨는 한 시간 앞을 예측 못 할 정도로 표변한다고 한다. 황석채(黃石寨) 들어가는 입구. 가이드가 장가계의 중심이 황석채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황석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우리가 탄 케이블카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재수 좋으면 걸린다는 유리 케이블카가 우리 몫이 되었다. 황석채에는 유달리 원숭이가 많이 산다. 음식을 얻어 먹으려 관광객 옆까지 접근한다. 가방을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날쌔게 달려드니 조심해야 한다. 황석채에서는 원..

사진속일상 2016.07.02

꿈에서 아버지를 뵙다

새벽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다. 한적한 다리 위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옆에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지예? 아버지가 맞지예?"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띠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 울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살아계실 때 다정하게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따뜻하게 나를 껴안아 줄 뿐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계속 흐느꼈다. 아버지는 흰색의 깔끔한 여름옷을 입고 계셨다. 얼굴은 살이 찌시고, 표정은 없었지만 밝았다. 오래전 꿈에서는 항상 병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마음이 아팠었다.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잠이 깼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길위의단상 2016.07.02

장가계(2) - 보봉호, 천문산

둘째 날 오전은 가게 두 군데를 들렀다. 패키지 여행에서 쇼핑은 의무 사항이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총 네 번의 쇼핑이 있었다. 물건을 하나도 안 사면 가이드 눈치가 보이긴 한다. 어쩔 수 없이 라텍스 매장에서 배개 두 개를 샀다. 이른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이 보봉호(寶峯湖)였다. 협곡을 막아 댐을 만들고 물을 가둔 인공호수다. 유람선을 타고 20분 정도 돌아다닌다. 장가계는 토가(土家)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리 버스 기사도 토가족이었다. 배를 타면 토가족 의상을 입은 아가씨가 타고 노래를 불러준다. 관광객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한다. 거의 관광버스 수준이다. 이번 여행 코스 중 보봉호가 제일 별로였다. 옵션 비용 30달러 값을 못했다. 잠깐 배를 탔을 뿐이었고, 경치가 볼 만한 것..

사진속일상 2016.07.01

장가계(1) - 십리화랑, 대협곡

갑작스레 장가계를 가게 되었다. 하나투어 여행박람회에서 값싼 장가계 여행 상품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신청했다. 옵션까지 포함하면 별 차이가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에는 싼 맛에 솔깃했다. 어찌 됐든 그 덕분에 장가계를 구경했다. 주위에 보면 장가계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한국 사람만 한 해에 80만 정도가 찾는다고 한다. 실제로 가 보니 현지인과 한국인밖에 없다. 안내문에는 한글이 병기되어 있고, 한국 돈이 어디서든 통한다. 가뭄에 콩 나듯 한둘의 서양인이 보일 뿐이다.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소문이 났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인천공항에서 장사(長沙)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중국동방항공편으로 밤 10시 30분에 공항을 떠나 다음날 새벽 3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잠깐 눈 붙이고 5시 ..

사진속일상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