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 들국화 / 천상병
가을에 들판에 피는 꽃을 통칭해서 사람들은 대개 들국화라고 부른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감국 같은 종류다. 하나하나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들국화라고 하는 것도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들국화라는 어감도 좋고, 또 들국화라는 말에는 가을의 정취가 듬뿍 느껴지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다가 구절초를 보았다. 가을이구나! 가을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직하며 짜여지는 천이다. 올 가을에는 어떤 무늬, 어떤 색조로 된 그림이 그려질까? 그런데 왜 그런지 올 가을은 허전하고 쓸쓸할 것같다. 그러나 가을 바람이 지나간 빈 자리에는 다시 새로운 그리움이 새록새록 일어나겠지. 쓸쓸함이든, 그리움이든,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든 나는 이 가을이 주는 선물을 몽땅 사랑할 것이다.
잿빛 하늘 아래 새로 피어난 구절초가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