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72]

샌. 2009. 5. 28. 08:59

봉인이 말했다.

"처음에 저는 당신이 성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알고 보니 군자 정도일 뿐이군요.

하늘이 만민을 낳을 때는 반드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으면 각각 직분이 주어질 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유해지면 남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대저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거처하고 새 새끼처럼 먹고

새처럼 날아다니니 종적이 없습니다.

천년을 살다가 싫으면

세상을 떠나 선정으로 올라가

저 흰 구름을 타고 하늘고향에 이를 것입니다.

세 가지 걱정도 닥치지 못할 것이며

몸에 재앙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어찌 욕됨이 있겠습니까?"

요임금이 그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청컨대 묻고자 합니다."

봉인이 말했다.

"물러가라!"

 

封人曰

始也 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則何懼之有

富而使人分之

則何事之有

夫聖人순居而구食

鳥行而無彰

千歲厭世

去而上천

乘彼白雲 至于帝鄕

三患莫至

身上無殃

則何辱之有

堯隨之曰

請問

封人曰

退已

 

- 天地 3

 

요임금이 유람을 할 때 화(華) 나라의 국경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국경지기인 봉인(封人)으로부터 장수하시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요임금은 장수하면 욕됨이 많다면서 사양한다. 부자가 되시라는 말에는 재물이 많으면 일이 많아진다면서 사양한다. 또 다남(多男)하시라는 말에는 걱정이 많아진다면서 사양한다. 역시 요임금다운 태도다. 장수, 부자, 다남은 세상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가치가 아닌가.

 

그런데 봉인의 반응은 의외다. 요임금은 성인이 아니라 군자 정도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봉인의 눈에는 요임금은 아직 분별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부자가 되면 남들에게 나누어주면 되고, 장수하더라도 새처럼 가볍게 살면 된다. 미리부터 자식이나 재물이나 장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인은 모든 경우에 두루 형통하면서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이념을 제시하고 거기에 맞추는 것은 또 다른 족쇄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쓸모없는 박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 큰 박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런 박이라면 강에 띄우고 소요유를 즐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요임금은 봉인의 말에 깨닫고 배우기를 청한다. 그러나 봉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여기에 장자의 통쾌함이 있다.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임금이 한낱 국경지기에게 배움을 청하고 퇴짜를 맞는 것이다. 장자말고 누가 이런 비유와 해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국경지기에게 보인 요임금의 태도 또한감히 보통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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