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71]

샌. 2009. 5. 22. 09:35

황제 훤원씨가 적수의 북쪽을 노닐며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관망하고 돌아오다가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를 시켜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눈 밝은 이주에게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소리에 밝은 끽후도 찾지 못했다.

이에 상(象)을 잊어버린 상망에게 시켰더니

그는 진주를 찾았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다.

형상을 잊은 그가 진주를 찾아낼 수 있다니!"

 

黃帝游乎 赤化之北

登乎崑崙之丘

而南望還歸

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후索之而不得

乃使象罔

象罔得之

黃帝曰

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 天地 2

 

선불교와 도가는 닮은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도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선불교라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만들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뜻하는 것은 진리는 말이나 문자로 설명되거나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지력으로 진리[道]를 알아낼 수도 없다. 그것은 절대의 세계고, 직관의 세계다. 사찰의 일주문에 적혀 있는 '入此門來 莫存知解'(이곳에 들어옴에 모든 알음알이를 버려라.)라는 말이나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道可道非常道'도 같은 의미다.

 

이 글에서 황제가 잃은 검은 진주는 도(道)를 뜻하는데 결국 진주를 찾은 것은 모든 상(象)을 잊었다는 뜻의 상망(象罔)이었다.눈이나 소리에 밝은 사람이나 지혜조차도 찾지 못했다. 도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를 수 없는 세계다. 찾으려 하고 이루려 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버려야 얻는다. 상망은 도를 찾겠다거나 성불하겠다는 의식조차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인간 지식이나 이성, 언어나 문자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하고 건너편으로 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듯이 진리를 향한 도정도 마찬가지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는 없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야 너무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는 경구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 것이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은 뒤 40여 년간설법을 통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애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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