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망가지다

샌. 2009. 3. 14. 17:27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해 허둥댄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가 술이 화근이었다. 동료와 소주 한 잔으로 시작한 것이 대취하여 지하철에서 잠들어 버렸고 눈을 떠보니 엉뚱한 곳에가 있었다. 정신이 몽롱하여 도대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답답하고 막막했다. 아마 이것저것 타며 헤맸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창피했던 것은 지하철 바닥에다가 토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었다. 옷도 토사물로 엉망이 되었다. 늙어서 온갖 추태를 다 부린 셈이었다.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을 손가락질 했는데 내가 똑 같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했는데 그나마 추운 밤에 길거리에 눕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이렇게 술로 망가지고 망신을 당한다. 한 번은 주차해 있는 차 밑에 들어가 자다가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운전하러 온 분이 나를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바퀴에 깔렸을 것이다. 그때 왜 하필 차 밑에 들어가 자려 했는지 아직도 불가사의다. 나는 술에 취하면 아무데서나 누워버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전에도 길거리에서 토하긴 했지만 어제처럼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토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술 마시는 것도 이젠 예전 같지 않고 술기운을 견디기도 힘들다. 다시 이런 창피를 안 당하려면 술을 멀리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처음처럼'이여, 너의 고운 얼굴에 반했다가 내 꼴이 이렇게 되었다. 제발 달콤했던 첫 향기로만 남아 있어다오.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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