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되는 책이 있다. 고래가 어떻게 춤을 추는지 호기심이 생기지만,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제목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의 사기를 높여주는 대신, 비난이나 질책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칭찬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해였던가, 자신감 없이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있던 한 아이가 다가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선생님에게서는 지적인 포스가 느껴져요.” ‘지적인 포스’라니, 아이가 쓰기에는 생경해 보이면서 나에게도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말이 인상적이어서 난 아직도 그때의 상황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습게도 그 말 한 마디에 의기양양해져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그 뒤에도 괜히 의기소침해 질 때면 그 때의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나 자신에 암시를 건다. ‘넌 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야. 자신 있게 생활하라고!’
칭찬에 감동하는 것은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에게 더욱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에 많은 아버지들이 가슴 뭉클했던 때도 있었다. 한 아이의 말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니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을 기르면서 제일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가 칭찬보다는 내 눈높이에 맞추어 훈계를 많이 한 점이다. 아이들 성격이 소극적으로 된 데는 내 탓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칭찬을 잘 못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소극적이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내 성장과정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심리분석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아마 일정 부분 칭찬과 격려의 결핍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똑 같은 과오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반복한 셈이다. 그런 아쉬움이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그리고 또 자식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자식을 기른다 해도 이상적으로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인 것 같다.
나를 관찰해 볼 때 나는 스스로를 평가절하 하는 습성이 있다. 겸손의 미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어떤 내적인 콤플렉스와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으니 나로서는 무척 괴로운 일이다. 비관적 경향이 있는 성격 탓인지 나 역시 칭찬에는 약하다. 오늘 아침에도 옛날에 들었던 그 학생의 말을 떠올리며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아이가 무심결에 했을지도 모르는 그 말 한 마디가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그 말을 자꾸 음미하고 싶어 하는 자신이 어떤 때는 가련해 보이기도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말이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따스한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욱이 어떤 사람의 가슴에 살아남아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이라면 천금의 가치 이상이라고 할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가슴에 그런 말 몇 마디라도 남길 수 있을까? 그래서 그 말로 인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춤추게 할 수 있다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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