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9)

샌. 2009. 2. 17. 08:50

2009년 1월 16일, 오늘부터는 랑탕 트레킹의 후반부에 들어간다. 여기서 그냥 샤브루베시로 내려가서 카트만두로 돌아가면 랑탕 계곡만 왕복하는 가장 짧은 트레킹 코스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고사인쿤드로 올라가서 4,610m의 라우레비나 고개를 넘어 산줄기를 타고 카트만두 근교인 순다리잘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엿새 동안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길고 험한 산길을 걸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툴로샤브로까지만 가는 오늘이 가장 여유 있으면서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날이다.




밤에 기침을 심하게 했다. 저녁이나 밤 같으면 힘들어 더 못 걸을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웬일인지 새로운 힘과 도전 의욕이 생긴다. 오늘은 4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는 날이라 느지막하게 아침 8시에 뱀부를 출발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한 시간 정도 내려갔다가 툴로샤브로 입구인 왼쪽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1,600m 고도에서 다시 시작해야 된다. 나무로 울창한 지그재그의 급경사를 한참동안 오르니 멀리 툴로샤브로 마을이 보였다. 산 사면은 온통 다랑이 논밭이고 마을은 특이하게도 산줄기 위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 너머 멀리에는 7천m급의 가네쉬히말의 연봉들이 보였다. 가네쉬히말은 티베트와 네팔의 경계가 되는 산맥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건만 깊은 계곡을 지나야했기 때문에 툴로샤브로까지 가는 데는 여기서도 두 시간이 더 걸렸다.





고도 2,210m에 위치한 툴로샤브로(Thulo Syabru)는 사방이 거침없이 트인 전망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꽤 커서 집들 사이로 롯지들이 있고, 학교와 곰파도 있었다. 마을의 위쪽으로는 침엽수림이 울창했다. 한낮의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우리는 이브닝뷰(Evening view) 롯지에 묵었는데 이름 그대로 이곳에 보는 석양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았다. 히말라야에 있는 롯지들 이름은 어쩌면 하나같이 다 예쁘다.


불교 사원인 곰파(Gompa) 앞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마치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깊었다. 얼굴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했고, 제기차기나 땅에 금을 긋고 하는 놀이가 우리와 대동소이했다.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을 지켜보다가 그들의 가난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이나 눈빛에서는 전혀 궁핍이나 불행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도리어 이 아이들이 국민소득 3만 달러 나라 아이들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또 어릴 때부터 낯선 사람을 조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 사람들의 삶은 호지 여사가 ‘오래된 미래’에서 보여준 라다크와 비슷한 것 같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긴밀한 가족적, 공동체적 삶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누리고 살아간다. 라다크는 빈약한 자원과 혹심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과 생태적 지혜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자급 공동체를 이루며, 여성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존경받는 사회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곳은 라다크보다는 훨씬 더 외부 세계와 접촉을 가졌겠지만 그래도 나그네의 눈에는 라다크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세계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우리는 오직 ‘산업 인간’의 가치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네팔의 농촌을 미개발된 또는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인 생태적 감수성과 지혜가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행복이 물질에 있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에 있음을 말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런 옛 지혜라고 생각한다. 현대 산업문명의 폭력성 앞에서 네팔 같은 나라가 무너져 버릴 때 우리에게 파멸은 눈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업문명과 라다크적 지혜를 어떻게 조화시켜서 사회 발전의 대안을 찾아내는가는 우리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 키워드는 농업 중심의 자립공동체, 절제와 검소, 평등, 생태 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때 동방의 불빛이었던 나라가 세계화라는 물결에 총대를 메고 앞장서 나가고 있음은 슬픈 현상이다. 자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충직한 하인 행세를 해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




기온 변화가 심하고 체력적으로 힘드니 많은 사람들이 약간씩은 몸살 증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더욱 골골하는 편이었다. 보기에 안타까웠는지 단장이 귀한 비상약 한 알을 건네주었다. 제발 내일은 나아지기를 바라며 마을 산책은 일찍 끝내고 롯지로 돌아와 침낭 안에 몸을 뉘었다. 마치 깊은 바다 속에 빠진 듯 몸은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고요한 정적 가운데에 카드놀이를 하는 포터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가끔씩 대기를 찢었다. 그리고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곧 달콤한 잠에 빠졌다. 꿈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밑에서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일행들이 호박부침개를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네팔 산속에서 먹는 호박부침개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밀가루와 호박까지 한국에서 가져왔다니 트레킹 경험자들의 준비와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옆에서는 포터들이 닭을 잡고 있었다. 영양보충을 위해서 우리가 마을에 있는 닭 다섯 마리를 샀던 것이다. 마리당 1,000 루피를 주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마을 닭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고 한다. 닭 한 마리에 그들의 한 달 생활비가 넘는 돈을 주고 사 먹는 우리를어떻게 생각할까? “Only Korean trekkers want chicken." 한국 트레커들만 오면 마을 닭들이 씨가 마른다는 동네 사람의 말에는 뒷맛이 씁쓸했다.


기대했던 저녁 노을은 밋밋하게 지나갔다. 저녁이 되면서 몸살기가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맛있게 뜯는 닭고기에도 입맛이 별로 동하지 않았다. 몸이 시원찮으니 만사가 귀찮고 쓸쓸해질 뿐이었다. 고사인쿤드까지만 올라간 뒤 나는 둔체로 하산해서 카트만두로 돌아가야겠다고 J에게 말했다. 다시 감기약을 먹고 침낭 속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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