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8)

샌. 2009. 2. 15. 08:27

목이 아파서 침을 삼키면 따끔거렸다. 호흡하기도 힘들다. 어제 밤에는 코를 심하게 골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코 안도 얼얼했다. 길을 걸으면서 계속 사탕을 빨고 뜨거운 물을 자주 마셨다.


롯지에서 길을 나설 때면 항상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다. 고소에서는 반드시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말라야에서는 석회질 성분 때문에 물은 꼭 끓여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로 고생을 한다. ‘Hot water' 또는 ‘타토파니’ 하면 알루미늄 통에 끓인 물을 담아주는데 값이 롯지 방값과 비슷할 정도로 비쌌다. 그 물조차도 뿌연 색깔인데다 그릇 밑에는 침전물이 가라앉았다. 물맛이 시원찮은 것은 물론이다. 히말라야 같은 청정지역에서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우리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버너와 휘발유까지 준비했으나 카트만두를 출발할 때 놓고 오는 바람에 타토파니를 계속 사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랑탕을 출발하여 뱀부까지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수월하고 또 시간 여유가 있는데다 고소에서 벗어나게 되니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원기를 되찾았다.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하산 길이었다.


한 찻집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담소 중에 S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며 어떤 장엄한 힘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길을 걸으며 사람마다 머릿속의 생각은 다 다를 것이다. 또 히말라야를 찾은 이유도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길에서 느끼는 심정에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일상의 근심이나 굴레를 초월한 행복과 평화, 내적 희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자질구레한 세상사를 잊어서 좋다. 야속한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 태우며 걱정했던 땅의 일들은 훨훨 날아갔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존재 본연과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올라갈 때 묵었던 라마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롯지 벽에는 눈에 익은 꽃이 피어있어 무척 반가웠다. 햇살이 좋아 계단에 앉아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말리며 해바라기를 했다. 따스하고 행복했다.


마당의 테이블에는 혼자 트레킹을 하는 서양 청년이 달밧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모두들 부럽게 지켜보았다. 우리들은 네팔 음식에 익숙해지지 않아 늘 한국에서 가져간 반찬에 라면이나 누룽지 등의 신세를 지며 버티고 있다. 모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다음에 무엇을 먹어야 될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 청년처럼 롯지의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다면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 트레킹이 훨씬 수월해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롯지의 메뉴가 서양식과 비슷한 이유도 있지만 한국인의 유별난 식성 또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혼자 트레킹 하는 서양인의 모습 또한 무척 부러웠다.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고행하듯 홀로 걸어가는 모습은 늘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우리 같은 사람들과 비교되었다. 이번 랑탕 길에서 여러 트레킹 팀을 만났지만 서양인은 대개 혼자 아니면 많아야 두셋이었다. 포터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아름다운 개인주의가 느껴졌다. 나 역시 다음에 히말라야에 온다면 그들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다. 포터는 고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가능하면 혼자서 자유롭고 여유 있게 히말라야 길을 걸으리라.


뱀부 롯지에 도착해서는 히말라야에 든 이래 처음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땀에 절은 목수건도 빨았다. 날아갈 듯 개운했다. 이곳은 고도가 1,960m로 지리산 천왕봉 높이 정도니 고소증세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뱀부(Bamboo) 롯지는 말 그대로 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롯지 안내문에는 한글도 적혀 있어 한국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겨울은 ‘Korean season'이라고 하여 더욱 한국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성수기는 봄과 가을인데 시간 여유가 많은 서양인들이 이 시기에 많이 찾는데, 성수기에는 롯지가 부족하여 방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금은 손님이 적어 많은 롯지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고소증세에서 해방된 일행은 기분이 좋아져서 야크 치즈를 구워먹으며 술잔을 돌렸다. 누구는 노래를 불렀고, 누구는 시를 읊었다. 포터들도 합석하여 네팔 민요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전날의 랑탕은 바람소리가 벗을 하더니, 오늘 뱀부는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했다. J와 일찍 침낭 속에 들어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물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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