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4)

샌. 2009. 2. 9. 08:49

히말라야에 오기 전에 가장 걱정한 것이 고산병이었다. 고산병은 고도 3,000 m 전후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크고 증세도 다르다. 호흡을 충분히 하면서 천천히 걷는 것이 최선이라는 당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에 고도차가 500 m 이상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3,000 m 지점을 돌파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고소병 예방이 된다는 다이아막스 반 알을 먹었다. 원래 이 약은 이뇨제인데 고산병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지금은 히말라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쓴다고 한다. 일행 중 어떤 사람은 비아그라도 가지고 왔다. 성기능장애 치료에 쓰이는 이 약이 고산병에도 좋다는 설이 있는 모양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무척 쌀쌀했다. 5시에 기상해서 6시에 식사하고 7시에 출발하는 것은 이번 트레킹의 아침 시간표다. 고소 때문인지 어제보다 호흡이 가쁘고 힘도 더 들었다. 풍경은 울창한 삼림지대가 계속되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은 꾸준하게 오르막이 이어졌다.


가능하면 천천히 오르려고 하다보니 선두와는 거리가 생기고 앞뒤와도 간격이 벌어졌다. 도리어 이런 때가 편안하고 좋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맛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에 잠기는 때이다. 홀로 트레킹 하는 서양 청년이 부럽게 느껴졌던 것은 그의 용기와 함께 한 인간의 고독이 왠지 히말라야와 어울려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우리는 단체로 오기는 했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아무래도 고독과 침묵이 어울린다. 그러지 않고서는 히말라야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전생에 나는 수도승이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내 천성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고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좌불안석이 된다. 대신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있게 되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그것은 관계에 약하다는 얘기고 내 세계가 간섭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까칠한 성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에 들어서는 한국에서의 모든 일과 관계를 잊기로 했다. 아니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여기서는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히말라야의 매력에 빠지면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올라갈수록 설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앞쪽에 꼭대기만 보이는 봉우리가 랑탕 지역의 최고봉인 랑탕리룽(7225 m)이다. 고다타베라에서 일행은 따끈한 밀크티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야크 젖이 아니라 분유를 타서 주는 것이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풍광이 일변하여 나무가 사라지고 계곡 폭이 넓어진다. 아래쪽이 강물의 침식으로 생긴 깊숙한 V자 계곡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빙하가 만든 전형적인 U자 계곡이다. 위로 갈수록 강물의 양이 줄어들어 물의 위세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행 중에 지리를 전공한 J가 있어 빙하 지형의 형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만여 년 전의 빙하기 때는 이곳이 전부 엄청난 얼음과 눈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간빙기가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자 거대한 얼음덩이는 중력에 의해 산을 깎으면서 빙하가 되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백 m 높이의 얼음덩이의 압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 힘에 의해 암석이 깨지고 할퀸 흔적이 지금의 지형으로 남아있다. 산을 날카로워졌고 빙하가 흘러내렸던 자리는 U자 모양의 계곡이 되었다. 아주 느리긴 했지만 신의 얼음칼이 지금의 히말라야 지형을 만든 것이다.


지구의 역사로 볼 때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작 1만 년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내 작은 머리로 억 년대의 시간과 히말라야 산맥을 만든 거대한 에너지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약 2억 년 전, 남쪽에서 올라온 인도 대륙이 유라시아와 충돌하면서 지금의 히말라야라는 습곡산맥을 만들었다. 두 대륙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지구 비명소리의 단음절이나마 잡아낼 수 있을까. 두 대륙의 충돌 현장에 서 있는 내 존재는 한없이 약하고 덧없어 보인다. 수많은 생명들이 여기서 나고 죽고 했겠지만 아무 흔적도 없다. 인간이라는 종 또한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그 누구도 지구상에서 인간이 존재했음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른다.




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마니차를 돌린다. 작은 물레방아가 기도문을 적어 놓은 원통을 돌리는데 물이 쉬지 않고 기도를 하는 셈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은 룽다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통해서는 바람이 기도를 한다. 여기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물과 바람도 기도와 기원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과 물이 하는 기도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길, 저 먼 히말라야에서 바람과 물이 쉼 없이 올리는 기도 덕분에 지금 세계는 이 정도나마 유지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순수하고 간절한 소망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에 들어설 수 있기를 이방인 나그네도 마니차 앞에서 마음속으로 합장을 드렸다.




11시 30분, 붓다호텔(Buddha Hotel)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아침 7시에 출발했으니 라마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4시간 30분이 걸렸다. 점심은 맨밥과 계란 후라이를 시키고, 국은 가져간 재료로 꽁치김치찌개를 만들었다. 그냥은 먹기 힘든 푸석푸석한 네팔의 밥을 다들 국에 말아서 먹었다.


식사 뒤에는 느긋하고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히말라야 겨울의 한낮 햇볕은 한국의 한여름 날 해변 이상으로 따갑고 강렬했다. 등산화를 벗으니 이내 양말이 뽀송뽀송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얼굴에 선크림을 발랐다.




포터들은 시간만 나면 카드놀이나 손당구를 즐긴다. 손당구는 넓은 판자 네 귀퉁이에 구멍을 뚫어놓고 손으로 납작한 나무를 쳐서 구멍에 넣는 게임이다. 알까기와 당구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네팔에서는 나이 불문하고 어디서나 이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시적인 이런 놀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과 감정의 교환이 있다. 반면에 컴퓨터 게임은 게임 내용도 문제지만 차가운 기계와의 대면일 뿐 따스한 인간의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명의 물결이 컴퓨터를 몰고 오면 네팔도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삶의 양식이 통째로 바뀌면서 문명의 병리현상이 이 태고의 땅에도 나타날 것이다.


포터들 중에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 전화를 하기도 하고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기도 하는 걸 보았다. 이런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전화 통화가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위성과 직접 송수신이 되지 않나 싶다. 하여튼 휴대폰을 가진 포터의 모습은 마치 MP3를 듣는 스님의 모습처럼 나에게는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어느 찻집에서 휴식 중에 멋진 한국인 부부여행객을 만났다. 50대로 보이는 이들은 둘이서 티베트와 네팔을 도보여행 중이라고 했다. 며칠 전에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와 지금은 우리와 같은 랑탕 트레킹을 하는 중이었다. 또한 그들은 산티아고 길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도보로 여행했다 해서 우리들의 감탄을 받았다. 부부 둘이서 험한 길을 함께 하기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저 정도가 되자면 부부라기보다는 친구면서 인생의 도반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통속적인 우리들의 질문에 귀찮았는지 작고 단단해 보이는 여자는 거의 말이 없었다. 어쨌든 무척 부러운 부부였다.


아침에 먹었던 고소약 때문인지 거의 30분마나 소변이 나왔다. 3,000 m를 넘은 뒤부터는 머리도 약간씩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고소증세의 가장 일반적인 것이 두통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심하지 않는 한 참는 도리밖에 없다. 또 일행 중 여러 사람들이 오늘 들어서부터 입맛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입맛이 없거나 소화불량이 되는 것 역시 고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세들이다.





오후 3시 20분에 오늘의 목표 지점인 랑탕(3,330 m)에 도착했다. 랑탕은 랑탕 계곡의 중심 지역으로 넓은 U자 계곡의 가운데에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티베트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마을에는 작은 사원도 있고 집집마다 룽다가 펄럭였다. 앞쪽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체르고리와 칸첸포 설산이 보였다. 저녁이 되자 랑탕은 붉게 물들었다. 해가 지자 계곡 사이로 시리우스가 나타나 밝게 빛났다. 시리우스는 가장 밝은 별인 동시에 지구에서의 거리는 약 9 광년으로 아주 가까이 있다. 9 년 전이라면 지구에서는 새로운 세기가 막 시작되었던 때다. 그때 시리우스에서 만들어져서 별을 출발한 빛의 광자가 지금 내 망막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를 격해 있던 두 존재가 지금 여기 동일한 시공간에서 조우를 했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밤이 되자 바람이 거세지며 무척 추워졌다. 랑탕의 샹그릴라 롯지는 좁고 부실했다. 침낭에 뜨거운 물병을 넣고 내복 위에는 겉옷을 더 껴입고 머리에는 털모자까지 쓰고 침낭에 들어갔다. 잠을 자는 도중에도 숨이 차서 여러 번 잠이 깨었다. 산소를 더 달라고 몸이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추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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