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3)

샌. 2009. 2. 6. 15:35

이제부터 본격적인 랑탕 트레킹의 시작이다. 랑탕(Langtang)은 ‘야크를 따라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도망가는 야크를 따라가다가 이 아름다운 골짜기를 발견했다는데 티벳어로 ‘랑’은 ‘야크’, ‘탕’은 ‘따라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랑탕 계곡은 1940년대에 서양인들에 의해 외부에 알려졌고, 1971년에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닷새 동안 랑탕계곡을 따라 5,000 m 가까운 고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샤브루베시의 붓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히말라야의 첫 밤을 보내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아직 고도가 낮아선지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물휴지로 얼굴을 닦는 것으로 세면을 마쳤다. 히말라야에서는 물도 부족하거니와 찬물로 세수를 하면 고소에 걸릴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멀수록 좋다. 물휴지 세수는 여러 날 반복하니 도리어 편하고 좋았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것 중 하나가 물휴지였다. 트레킹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출발했다.




샤브루베시 마을은 코테코시강과 랑탕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코테코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랑탕강을 따라 난 길을 타고 올라갔다. 강을 왼쪽으로 벗하며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그런데 마을에서부터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우리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었다. 국내에서도 산길을 안내하는 개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신이 마치 트레커라도 되는 양 여유만만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놈은 전생에 셰르파나 가이드였는지 모른다. 히말라야 산간 마을에서는 개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놓아서 기른다. 히말라야의 동물들은 큰 산과 사람을 닮아선지 하나같이 온순하고 느긋하다. 개 역시 느리고 어슬렁거릴 뿐 낯 선 사람을 향해 날카롭게 짖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오늘부터 배낭에는 트래킹 도중에 필요한 물품만 챙겨 메고 간다. 물 두 통, 여벌의 옷 두 벌, 간식거리, 휴지, 선글라스, 그리고 카메라 두 대다. 이 정도만 해도 내 작은 배낭은 가득 찼다. 특히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니콘 FM 필카가 부담이 많이 되었다. 산 속에서는 디카의 전지 충전이 어렵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무게뿐만 아니라 도난 등 여러 가지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포터가 메고 가는 카고백에 넣을 수도 없어 늘 배낭에 갖고 다녀야 했다. 괜히 갖고 왔다고 후회한 것이 이 필카였다. 트레킹에서 부담이 되는 물건은 가능하면 생략하는 게 좋다.


날씨는 아열대기후답게 낮에는 더위를 느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늦봄과 비슷하다고 할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어떤 곳에서는 정글지대와 닮은 모습의 숲이 우거진 곳을 통과했다. 행렬은 자연스럽게 전위와 후위로 나누어졌다. 나는 초보들과 함께 후위에 처져서 천천히 뒤따라갔다. 힘이 들어서라기보다는 고소증세에 대비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머릿속으로는 ‘천천히 오르는 자가 가장 높이 오른다.’라는 말을 주문 걸 듯 되뇌며 걸었다.


내가 히말라야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풍경 역시 아직은 한국의 깊은 산에 들어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가끔씩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지?’하는 자문이 든다. 무엇을 이루려 왔단 말인가. 출발하기 전 한 동료가 왜 굳이 히말라야까지 가느냐고 물었을 때 난감했었던 기억도 난다.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에서 이런저런 세상적 성취를 자랑하는 주인공에게 티벳 여인이 대답한다. “당신들은 야망을 실현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자아를 버리려고 합니다.”


산길 주위에는 풀을 뜯는 소들도 있었다. 어떤 소는 우리를 보더니 자신의 주인으로 착각한 듯 길로 들어와 따라오는 것이었다. 대개 동물은 사람을 보면 피하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바라본다. 나그네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정서적 교감이 오가는 것으로 나에게는 느껴졌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으로 비유한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난 저 소를 타면 심우도에서 여섯 번째 단계인 기우귀가(騎牛歸家)의 경지로 단박에 뛰어오를 것만 같다. 저 소가 나를 히말라야 산속 숨겨진 피안의 나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는 농작물이 잘 안 되므로 목축이 주된 수입원인 것 같다. 방목하는 소, 야크, 말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는 여기서는 사람과 동물이 한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은 가옥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개 1층은 가축우리이고 사람들은 2층에서 산다. 사람과 동물이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이다. 사실 네팔에 와보면 깨끗하고 더러운 것, 사람과 동물의 구별이 흐릿해진다. 크고 넓은 히말라야의 품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올라갈수록 하늘이 넓어지고 전망이 열리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겹쳐진 산의 능선들이 무척 아름답다. 길에서는 다른 트레킹 팀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서양 트레커들은 대개 혼자나 둘인데 한국 트레커들은 우리처럼 많은 수의 단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한국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고 서양인들은 조용하다. 또한 서양인들은 등산 장비도 허름하고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옷도 그냥 평상복 수준이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명 장비를 요란하게 갖추고 있다. 서양인들은 짐도 포터 없이 자신이 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 큰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혼자서 걸어가는 서양 젊은이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나중에 롯지에서 만난 서양 사람들을 보면 식사도 그냥 시켜서 잘도 먹고 식사 후에는 조용히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고, 식사 후에는 떠들고 잡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물소리 요란한 밤부(Bamboo)에서 떡라면으로 점심을 했다. 포터 중 하나가 요리사여서 롯지의 주방을 빌려 우리가 가지고 간 라면을 끓인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먹는 라면은 꿀맛이었다. 식사 후에는 따스한 햇볕에 등산화와 양말을 말리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S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인상이 굳어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한결 나았다. 이번에 히말라야에 오면서 거금 20만 원을 주고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샀다. 그런데 안경점에서 권한 것이 젊은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포츠용이어서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제비 날개처럼 생긴 이 놈을 산에서 내려가면 언제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림체와 람체를 지나 3시 40분에 라마 호텔(Lama Hotel)에 도착했다. 여기는 고도가 2400 m인 곳이다. 아직 신체적으로는 고소증세를 느끼지 못하겠으나 커피믹스 봉지가 팽팽하게 부풀어진 것으로 기압이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편으로 높게 솟은 산 사이로 보이는 좁은 하늘에 카시오페아와 오리온 별자리가 보였다.




라마 호텔에서는 난롯가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들뜬 기분에 가져온 술을 좀 과하게 마셨다. 여기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더욱 그랬는지 몰랐다. 고도 3,000 m 이상에서는 고소증세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맥주와 소주가 섞여져서 그랬는지, 뜨거운 난로의 열 때문이었는지 머리가 아팠고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침낭 속에 들어갔다. 마당에서는 뒤늦게 떠오른 달을 보며 감탄하는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밝고 큰 달은 처음 봤다는 감탄들이었다. 그러나 난 몸을 움직이기도 싫었다.




이것이 우리가 묵은 라마 호텔의 내부인데 전형적인 히말라야 롯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에서는 이름은 ‘호텔’, ‘게스트하우스’, ‘롯지’ 등으로 불리지만 우리말로는 ‘산장’에 해당되는 숙소로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가로 세로 약 2 m 정도 되는 정사각형 방에 나무 침대 두 개가 놓여있다. 카고백을 가운데 놓으면 다닐 여유도 없이 좁다. 벽은 돌이나 시멘트, 어떤 곳은 그냥 판자로 얼기설기 막기도 했다. 그냥 찬 바람만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벽이 엉성해 옆 방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리기도 한다. 난방은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저녁만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외에 방법이 없다. 세면시설도 없고 볼일은 공동화장실에서 보는데 밤이 되면 물이 얼어서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침낭 속에 들어가면 추운 바깥에 나가기가 싫어서 소변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다. 여기에 고산증세로 잠도 잘 오지 않게 되면 괴로운 밤이 된다. 어서 빨리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추운 밤을 견딜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포터들의 잠자리를 보면 우리들 방은 말 그대로 호텔이다. 그들은 방이 아니라 식당 바닥에서, 또는 외양간 같은 데서 한데 엉켜 잠을 잔다. 침낭도 없이 얇은 이불만 덮고도 단잠을 잔다. 롯지의 시설이 어떻다고 불평을 하는 것은 포터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사치스런 일이다. 그리고 다른 편으로 생각하면 지내기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히말라야의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 만약 여기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쾌적한 사성급 호텔이 들어선다면 이곳은 더 이상 히말라야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본은 이곳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히말라야를 위해서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불편하다는 것이 차라리 축복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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