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5)

샌. 2009. 2. 10. 10:53

2009년 1월 12일, 네팔에 온지 닷새째, 샤브루베시에서 트레킹을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랑탕 계곡의 맨 끝 마을인 캰진곰파(Kyanjin Gompa)까지 간다. 3 시간 정도 걸으면 이를 수 있는 마을이다. 캰진곰파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장소로 여기에서 랑시샤카르카를 다녀오고, 체르고리(4,984 m)에도 오를 예정이다.


역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부산하게 짐을 쌌다. 침낭을 마는데도 숨이 차고, 등산화의 끈을 매는데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캄캄한 바깥은 바람이 세고 추웠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식당에 주문한 계란후라이, 감자와 함께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 식사를 했다.




해가 떠오르니 햇살은 눈부시게 따갑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다. 우리는 맑고 밝고 환한 세상 속에 들어있다. 네팔 사람들의 맑은 성품과 낙천성은 꼭 히말라야를 그대로 닮았다. 자연은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키운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삿된 욕망이 자라날 틈새가 없을 것 같다.


룸 파트너인 J와 걸어가는데 들판에서 일하던 네팔 여인이 “나마스떼 나마스떼” 하며 맑은 대기만큼이나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우리가 둘이라고 ‘나마스떼’를 두 번 반복한 것일까, 여인의 노래하는 듯한 가늘고 투명한 목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겼다. ‘당신 내면의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의 ‘나마스떼’ 인사를 받을 때면 항상 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솟아올라오는 느낌에 젖게 된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 곳

우주 전체가 자리한 그 곳을 경배합니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 곳

사랑과 빛, 진실과 평화가 깃든 그 곳을 경배합니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 곳을 경배합니다.

당신이 당신 내면의 그 곳에 있고

내가 나의 내면의 그 곳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길을 따라 마니석을 쌓은 긴 담이 자주 나타났다. 마니석은 돌에다 경전이나 기도문을 새긴 것인데 길을 가면서도 기도문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마니석은 반드시 왼편으로 지나가야 한다. 산맥을 경계로 티베트와 인접한 이곳은 티베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종교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네팔 전체로는 약 80%가 힌두교인이라는데 불교와 힌두교의 구분이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쉽지 않았다. 힌두사원에도 부처상이 모셔져 있고, 고사인쿤드에서 열리는 힌두교 축제 때 보면 불교도도 함께 참여하여 기도하고 춤춘다. 두 종교는 대립과 갈등보다는 상호인정과 포용의 길을 가는 것 같다. 만나기만 하면 불꽃이 튀는 모모 종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캰진곰파로 가는 길은 넓은 평원지대를 지난다. 땅에는 산에서 흘러내린 많은 돌들이 흘어져 있다. 이런 걸 빙퇴석이라고 하는 건가,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키 작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있을 뿐 넓은 땅은 가축의 방목지 정도로 이용되고 있었다. 작물을 자랄 수 없는 기후인 것 같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나 우열장단(優劣長短)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해야 하고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가운데 인간답게 사는 최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불행은 삶의 정답이 오직 일류대학, 일류직장, 돈 많은 배우자, 비싼 아파트 등으로 너무나 협소한 데 있다는 진단에 공감한다. 그 좁디좁은 정답에 개인과 가족, 온 사회가 올인함으로써 불행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네팔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칭 ‘생활좌파’라는 분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는 ‘사회주의적 장치가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하고, 자본의 힘이 드문드문이라도 무력화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그리고 교조적 좌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3원1근’(3遠1近)을 제시했는데 TV, 베스트셀러, 대형마트를 멀리 하고 예술작품을 가까이 하라는 충고였다. 참고할 만한 얘기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인생 최대의 화두다. 정답 없는 그 질문을 다시 히말라야 길을 걸으며 물었다.




7,225 m의 랑탕리룽이 바로 옆에 나타났다. 거대한 빙하를 거느린 위용이 대단했다. 우리는 드디어 설산의 장관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산 아래와 달리 여기는 풍경이 호쾌하고 장엄하다. 나무들은 전혀 자라지 못하고 풀도 보기 어렵다. 돌과 흙과 눈의 땅이다. 공기도 희박하여 산소는 해수면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10시 40분에 캰진곰파의 뷰포인트(Viewpoint) 롯지에 도착했다. 앞으로 이틀간 여기서 묵게 되어 있다. 롯지 주인은 사람 좋은 얼굴에 늘 웃음을 달고 사는데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부인이 서울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데 매달 500 달러씩 돈을 부쳐줘서 늘 부자라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자랑한다. 한국에 가서 일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온 가족의 살림이 펴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아마 롯지도 부인 덕분에 지었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든 지금 이 사람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일행은 리룽 빙하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키모슝리로 출발했다. 그러나 나와 S, G, 셋은 그냥 롯지에 남았다. S는 고소병이 심해 구토를 하고, G는 몸살로, 나 역시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내일을 위해 오후 시간은 푹 쉬고 싶었다.





여기는 고도가 3,870 m인 지역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힘이 드는 것은 물론 의식도 몽롱하다. 안경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안경을 찾느라 허둥대고, 물건을 놓고도 금방 깜빡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서는 바삐 서두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느긋하게, 천천히,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야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 유일한 자유시간이 더없이 고맙고 행복했다. 롯지 뜰에 나가 등산화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고, 마을을 산책하기도 했다. 날씨는 연일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해가 지면 기온은 급격히 떨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난로에 나무와 야크똥을 태워 난방을 한다. 그런데 트레커들이 많아지면서 나무 수요가 늘어나서 산의 나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키모슝리로 떠났던 아홉 명은 목표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두 시간 만에 되돌아왔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니 목과 코가 따갑고 으슬으슬 추워졌다. 감기약을 먹고 바로 곯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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