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주먹이 법

샌. 2009. 1. 7. 08:58

이복형제가 있었다. 힘 세고 사나운 형은집과 재산을 삣고는 동생을 쫓아냈다. 약하고 힘 없는 동생은 고작 하는 화풀이가 형 마당에 돌팔매를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형은 버릇을 고쳐준다며 동생을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형이 그렇게 무법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동네 이장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이장 역시 주먹이 법이고 힘이 정의라는 논리를 가훈으로 떠받들고 있다. 이장의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다. 여기는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마을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해서 며칠 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건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겨패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비행기 한 대, 탱크 한 대도 없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은 네 명인가가 죽었다고 보도되었다. 그것도 대부분 자신들의 오폭으로 희생된 것이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쪽은 사망자만 1천 명에 가깝다. 대부분이 민간인이고 어린이도 상당 비율이다. 하마스인가 뭔가 하는 무장대원들에게 보복하겠다고 무차별적인 학살극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꼼짝 못하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의도 같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제 멋대로 행동하는데는당연히 미국이라는 왕초 나라가뒤에서 두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더니, 자신이 포탄을 쏘는 것은 자위권 행사고 남이 포탄을 쏘면 테러다. 자신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고, 남이 핵무기를 가지면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이번 전쟁의 명분이 팔레스타인에서 미리 로켓포 공격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성능도 시원찮은 그 로켓으로 이스라엘인 세 명인가가 희생된 걸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응징치고는 이번 이스라엘의 대응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이스라엘은 히틀레의 대학살로 그 어느 나라보다 약자의 서러움을 겪은 민족이다. 그런 나라가 이토록 처절하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생존 차원으로 봐주기엔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에는 종교적인 배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둘 다 대표적인 일신교을 믿는나라인데 도리어 종교가 두 나라의 화해와 공존에 장벽이 되고 있다. 또한 종교가 전쟁과 살인의 명분을 주는 측면도 있다. 전쟁을 신의 뜻으로 믿는다면 인간은 한없이 용감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다. 도대체 성전(聖戰)이라고 부르는 성스러운 전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모든 전쟁은 부끄럽고 추악할 뿐이다.

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슴 아픈 사태를 보면서 힘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를 새삼 실감한다. 만약 팔레스타인에 막강한 군사력이나 핵무기가 있다면 이스라엘이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왜 북한이 그토록 핵에 집착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말씀 이전에 세상은 주먹이 우선이고 힘이 정의인 곳이다. 역사는 늘 승자가 옳다고 기록된다. 그러나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것 역시 진실이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저렇게 자신의 힘을 뽐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태가 역전되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내 목숨이 귀하면 남의 목숨도 똑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 같지만, 하늘의 원리는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이 시간 포탄이 터지는 한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게 슈퍼맨의 능력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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