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주식인 ‘달밧’은 접시에 밥과 반찬이 함께 나오는데 네팔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밥과 반찬을 섞어서 먹는다. 그런데 한국인의 입맛과는 잘 맞지 않아 달밧을 먹기가 쉽지 않다. 쌀알은 훅 불면 날아갈 듯 퍼석퍼석하고 반찬도 특이한 향기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히말라야에서 두 주일 가까이 생활한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달밧을 먹지 못했다. 다만 한 사람 예외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나였다. 처음에 달밧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더니 모두들 신기한 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가끔 달밧을 시켜 먹었는데 맛보다는 양이 너무 많아 남길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히말라야 체질이라며 그냥 눌러 살라고 놀리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은 내 몸이 자랑할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이다. 나는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반찬투정이란 것을 몰랐다. 맨밥에 콩나물국 하나만 있어도 맛있게 먹는다. 나를 거둬주신 외할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먹는 게 복스럽다며 대견해 하셨다. 지금도 먹는 데 대해서는 까다롭지 않고 종류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챙기고, 매스컴에 무엇이 좋다 나쁘다가 방송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나는 그런 걸 무시하며 산다. 그러므로 보약 같은 것에도 별 관심이 없다. 오직 밥과 그때그때 주어진 음식만 맛있게 먹는다는 주의다. 몸이 요구하는 음식을 먹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활 습관 때문에 이번 히말라야에 갔을 때 누구도 먹지 못했던 달밧을 혼자만 먹을 수 있었다고 본다.
잠을 잘 자는 것 또한 남이 갖지 못한 나의 자랑이다. 나는 잠을 맛있게 잘 뿐만 아니라 오래 잔다. 대개 10시 전에는 잠자리에 드는데 어떤 날은 9시 뉴스를 보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침에는 핸드폰의 알람이 없으면 일어나지를 못한다. 하루에 8 - 9 시간을 자는데 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외에는 그냥 잠 속에 빠져 있다. 너무 잠을 많이 자서 어떤 때는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은 새벽잠이 없어져서 골치 아프다는데 나는 아직 잠이 고프기만 하다. 대신에 낮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차를 타면 금방 조는데 난 그렇지도 않다. 소심한 내가 이런 잠 습관이 아니었다면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히말라야에서도 나의 잠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초보면서도 별로 뒤지지 않고 트레킹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렇게 잘 먹고 잘 자는 바탕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잘 먹고 잘 자니 볼 일 보는 것도 아주 원활하다. 대신에 아내는 불면증과 변비에 시달려 나와 대조를 이룬다. 먹는 것 또한 살찌는 것 때문에 마음대로 먹지 못하니 옆에서 보아도 무척 안타깝다. 먹고 자고 배변하는 것은 삶의 기본요소인데 아내는 트리플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체질적으로 그렇게 타고 났으니 어찌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때문인지 아내는 늘 잔병을 달고 산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먹고 자고 싸는 능력의 반이라도 빌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게 건강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약골 타입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와 장 기능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커피나 맥주, 찬 음식과는 상극이었다. 조금만 신경을 쓸 일이 생기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 신세를 져야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언제부턴가 그런 증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가 마음공부가 시작되었던 시기부터라고 믿고 있다. 마음을 비우려 노력하고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니 속병도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세 가지 복을 주신 데 대해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것은 타고난 체질이 아니라면 노력으로 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감사의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진다. 젊었을 때야 몸보다는 일의 성취나 명예 따위가 중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껍데기보다는 몸 중심의 삶의 기본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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