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재미 / 문태준

샌. 2008. 10. 1. 09:29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가재미 / 문태준

 

동기 S가 암병동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는데, 환자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 문병을 갔더니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문 틈으로 누워 있는 핼쓱한 모습만 보고 뒤돌아섰다.

 

아내 때문에 10여 일째 병원 출입을 하고 있다. 신경외과 병동인 이곳은 주로 머리를 다친 사람들이 입원해 있다. 스치는 환자들마다 안스럽고 불쌍하다.특히 가족은 환자를 보며 무력감을 많이 느낀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아프다.

 

문병이란 무엇일까? 찾아가 보는 것, 그리고 몇 마디 말이 환자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가재미처럼 누워 있는 그녀에게 나도 한 마리 가재미가 되어 헤엄쳐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옆에 누워 그녀가 내 몸을 적셔주도록 가만히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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