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탱자꽃

샌. 2008. 4. 18. 11:28



탱자나무를 보면 누구나 한 가지 쯤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것 같다. 그런 추억이 별로 없는 나 같은 경우 탱자나무를 보면 일부러라도 그런 기억 하나쯤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니 하물며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싶다. 남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탱자나무에 대한 기억을 선명히 얘기할 때면 나는 괜히 부러워진다.

 

경복궁 화단에서 탱자꽃을 처음 보았다. 순백의 큰 꽃이었다. 어찌 보면 온통 가시로 된 나무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희고 컸다. 그러나 식물의 가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그것은 상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어용이기 때문이다. 해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절대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식물의 가시는 동물의 이빨과는 다르다. 나는 그것을 수동의 미라고 부르고 싶다.

 

어느 시인에게 이 꽃은도시로 떠난 이쁜이다. 탱자꽃을 보며 그런 이쁜이 한 사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도시에서 자란

계집아이 얼굴이다

창백해 보이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가시

하얗게 핀 탱자꽃을 보면

어릴 때 같이 뛰놀던

이쁜이 생각이 난다

온 집을 둘러싸

아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옆집 애꾸눈에 곰보 얼굴을 가진

배를 타던 아저씨의

큰 딸

탱자나무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나는 늘 이쁜이를 불러내

같이 놀았다

삐비 뽑고 박달나무 열매 따먹고

오디 열매에 입이 검어질 때까지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뱃사람 애꾸눈 곰보 아저씨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이쁜이네 식구 서울로 뜨고 말았다

가을이 되어

이쁜이네 집 울타리에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탱자알만

애꿎게 터쳐 버리고

이쁜이는 영 못 만나고

 

- 탱자꽃 / 권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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