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중랑천 벚꽃길

샌. 2008. 4. 11. 09:55



40 년 정도 서울에서 사는 동안 중랑천변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중랑천 좌우쪽 동네인 면목동과 장안동에서 20 년 가까이 살았으니 말이다. 1970 년대 초에 면목동으로 이사갔을 때는 청량리 쪽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없어서 멀리 중랑교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배를 타고 중랑천을 건너야 했다. 지금의 중랑천 주변은 그때에 비하면 상전벽해가 되었다.

 

중랑천 둑이 만들어지고 벚나무를 심은 것이 70 년대 후반에서 80 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는 이 중랑천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얘기다. 당시의 벚나무는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 키 높이 정도로 어렸다. 피는 벚꽃도 풍성하지 않아 별로 볼 품이 없었다.

 

그 중랑천 벚꽃길을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당시 5 층의 시영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재개발이 되어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그리고 벚나무 또한 그동안의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고목으로 변해 있었다. 수령이 30 년 정도 되는 나무치고는 조로했다 싶을 정도로 벚나무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저 벚나무야말로 나와 함께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직선으로 뻗은긴 중랑천 둑길의 벚꽃은 장관이었다. 한쪽으로만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도 길은 벚꽃 터널을 이루었다. 평일인데도 길에는 벚꽃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벤치에 앉아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자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역시 벚꽃은 낙화하는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수많은 꽃잎이 한 순간에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감상에 젖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벚꽃의 낙화는 가을 낙엽 같은 슬픔이나 애잔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축제의 나팔 소리거나 환호성 같다.

 

강을 파내고 시멘트로 발라 운하를 만들 생각을 하기 보다는, 강을 따라 꽃나무를 심는다면 차라리 얼마나 좋을까. 한강을 따라, 낙동강을 따라꽃길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그 얼마나 멋진 풍경이 될 것인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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