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그늘

샌. 2007. 10. 11. 11:07

나이가 들수록 그늘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그늘을 애써 피하지 않게 된다.

어렸을 때는 그저 밝은 것만 보려 했고, 밝은 세계로만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밝은 것이 있기 위해서는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인생은 그늘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삶의 그늘은 우리를 진중하게 만든다.

음식이 곰삭아야 제 맛을 내듯 그늘은 우리의 삶을 맛깔 나게 해준다.

그늘은 삶을 곰삭게 하는 장치다.

어느 시인의 글에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삶’이라는 멋진 표현을 보았다.

제대로 된 맛은 그늘 있는 맛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 성숙한 삶에는 그늘이 깃들어 있다.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듯한 사람은 왠지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경박한 밝음에는 인생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늘이 없는 기쁨과 행복은 공허하다.

그러나 인생의 그늘을 겪어온 얼굴은 다르다.

그늘이 있는 사람만이 그늘이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늘이 있는 사람만이 그늘이 있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늘이 어둡고 춥고 외로운 곳이지만 거기를 거치지 않고는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그늘 있는 표정을 가진 사람이 좋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내 그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찾아오는 외로움, 쓸쓸함, 심약함, 슬픔, 이별, 가난, 좌절, 우울, 이 모든 그늘을 사랑한다.


가을은 그늘의 계절이다.

모든 쓸쓸한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안녕의 인사를 나누는 계절이다.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가을에는 그늘의 색깔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가을에는 더욱 진하고 아름답게나의 그늘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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