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삶은 때론 갑자기 껄렁해지는 것이니

샌. 2007. 10. 19. 09:37

이 가을에 A씨가 봉화로 거처를 옮긴다고 한다. 10년 전에 A씨 부부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했다. 그분들의 시골살이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 삶은 내가 귀농을 꿈꾸고 어설프게 실행하기까지 용기를 준 원천이 되었다. 그간 즐거움 보다는 어려움에 더 공감을 하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대개 가혹하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잘 길들여져 적당히 적응하며 사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그런 삶에는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부러 힘든 길을 찾아 나선다. '이건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지만 세상 안에서 사는 한 현실과의 갈등은 겪지 않을 수 없다. 때로 현실은 가혹할 정도로 시련을 안겨준다. 그들이 겉모습처럼 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때론 좌절하고길을 잃고 운다.

 

A씨가 터를 떠나며 시 하나를 인용했다. 배문성 님의 '나는 불량해서 좋다'라는 시다.

 

사실 나뭇잎이 시작도 끝도 없이

떨어지는 모습은 얼만나 껄렁한가

사라지는 일은 언제나 한 줄기

시시껄렁한 구석을 가지지 마련이다

울고 있을 때라든지 한숨을 쉴 때

내가 삶의 마지막 벼랑에

다다른 듯이 절박한 때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껄렁한 시선이 있는 것이다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을 때

간절하게 맺어지기를 원했으나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

그 속에 숨어 있는 사특한 이별의 기운

불량한 작별의 구름이 문득문득 피어나는 것이다

그럴 때는 내가 어떻더냐고

때론 너는 어떠하냐고 묻지 않는 법이다

그냥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어짐 자체를 놓아버려야 된다

아주 불량한 몸짓으로

삶은 때론 갑자기 껄렁해지는 것이니

그래 잘 가라

내 손에 묻어 있는 너의 감촉

배 위를 스쳐 가던 손길하며

발자국에 남아 있던 나른한 느낌까지

훅 던져버리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말고

두 번 생각하지 말고

휙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아주 껄렁한 자세로

 

터를 떠나는 A씨에게 어찌 아쉬움과 회한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거기에 대해 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A씨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마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일어서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인생을 너무 진지하고 조심스레 살다 보면 상처를 입게 된다. 조금은 '불량하게' '껄렁하게' 인생을 대하고도 싶은 것이다. 썰렁한 농담처럼 대해도 볼 일이다. 봉화에서 새로운 삶을 여는 A씨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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